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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otany 니오타니 Apr 07. 2022

인생이 하나의 프로젝트라면

휴직 일기 

제주에 온 지 열흘 째 되던 날, 많이 흐렸다. 비가 내린다던 전날은 오히려 밝고 포근했는데, 비 없는 하늘이 더 어둡고 바름은 쌀쌀맞았다. 종잡기 힘든 제주도 날씨에 더 민감했던 이유는 어렵게 예약한 수풍석 박물관에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막상 나서니 집 안에서 보던 하늘과는 상관없이 도로는 벚꽃으로 가득했다. 제주의 산록도로를 달리노라면 평생 이 길만 달려도 좋겠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옅은 먹빛 하늘에도 꽃 빛이 화사하게 내리쬐서 달리는 동안 내내 행복했다. 집결 장소인 디 아넥스 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호텔 로비에서 시간을 보냈다. 작년에 2박 3일을 머문 곳인데 온천이 좋고 주변이 호젓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었다. 다른 것 보다 온천 때문에 호텔을 떠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포도 호텔로 알게 된 건축가 이타미 준에 대해서는 몇 년 전 다큐를 통해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이타미 준의 따님인 유이화 소장님이 엮은 책 <손의 흔적>을 통해 그의 고요하고도 염격 하며 동시에 자애로운 건축세계를 마음에 떠올리며 투어 버스에 올라탔다. 관리자가 없는 미술관, 치유와 명상의 공간으로서의 박물관으로 일컬어지는 수풍석(水風石) 박물관은 미디어에서 너무 많이 본 탓인지 첫눈에 와, 하는 탄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느낌은 박물관의 예술성 때문이 아닌 관람방식 때문인 것 같았다. 공간과 자연을 오롯이 명상하듯 느끼며, 자연이 공간을 채우는 방식을 관찰해야 하는데 가이드의 친절한 정답과 스무 명의 카메라가 동시에 터지며 그 감각을 느끼기는 불가능했다.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사유지 안에 있는 이타미 준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보고 나서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것은 수풍석 미술관이 있는 비오토피아의 환경이었다. 생태공원 내에 자리 잡은 박물관과 주민이 거주하는 공간이 어우러져 그 안에 독특한 분위기와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 자연스레 녹아들어 그 안에 한 참을 서 있고 싶었다. 이른 새벽, 해살이 가득한 날, 쓸쓸한 가을 억새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날, 소복소복 눈 내리는 겨울의 고요 속에 있는 수풍석 박물관을 떠올려 보았다. 건축은 그 목적이 아닌 자연을 전달하기 위한 중간 매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건축 자체가 목표가 아닌 건축을 통해 어떤 세상이 펼쳐지고 여백이 생겨나는지에 대한 고민이 느껴졌다. 그제야 자연을 컬렉션 한 콘셉트이라는 건축가의 이야기가 다시금 떠올랐다. 지역과 자연의 문맥에서 본질을 뽑아내 건축에 반영할지를 고민하고, 자연과의 조화 공간과 사람 간의 소통으로서의 건축을 지향했던 건축가 이타미 준, 유동룡의 깊은 고민과 성찰이 마음에 울렁였다.


일을 하면서 많은 프로젝트를 했다. 어떤 일은 잘해 내었고, 어떤 일은 그저 그렇게 사라졌으며 못해서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들도 있다. 하나하나의 평가에 앞서, 나는 그 일을 통해 어떤 가치를 전달하고 싶어 했을까. 일을 끝낸다, 보고서를 제출한다가 아닌 그 일을 통해 어떤 영향력과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던 것일까. 그 일들 하나하나, 그 일을 하는 시간들이 모여 내 인생이 되는 것인데 내 인생의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 내 인생의 방향은 무엇일까. 


큰 사람과 큰 풍경은 울림을 준다. 수풍석 박물관에서 건축가 이타미 준을 만난 날, 이 질문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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