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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otany 니오타니 Apr 06. 2022

구내식당의 기적

휴직 일기

휴직을 하고 나니 가장 큰 문제가 끼니 해결이다. 하루 한 끼 정도는 직접 만들어 먹겠는데, 두 끼 이상을 만드려니 준비하는 시간만 해도 만만치가 않다. 매번 사 먹기도 지겹고, 배달음식은 원체 싫어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제한된 상황에서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해결하려고 머리를 짜낸다. 오늘은 뭐 먹지? 직업이 있든 없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공통의 고민. 먹고산다는 게 중요하고도 참 공평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재택과 휴직을 하면서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삼시 세끼를 두 끼로 줄이기로 했다. 아무래도 움직임이 덜하고 먹는 시간이 자유롭다 보니 아점과 점저로 먹으면 식사 준비 부담도 덜고 위의 부담도 덜고 이참에 늘어난 몸무게도 덜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운동량이 많은 날은 속이 허전할 때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적응해 나가고 있다. 억지로 먹는 세끼보다 맛있게 먹는 두 끼가 더 행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끼니를 걱정하면서- 이러니 춘궁기 난민 같다- 가끔은 회사 구내식당이 그리워진다. 오전 근무가 끝나갈 즈음 점심메뉴를 확인하고 무엇을 먹을지 동료들과 얘기하고, 인기 있는 메뉴라도 나오는 날이면 식당 문을 여는 시간에 미리 내려가 줄을 서서 한정으로 제공되는 식판을 받아 들었을 때의 의기양양함을 즐기는 것도 직장생활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이다. 코로나 이후엔 저녁을 운영하지 않지만, 예전엔 아침/점심/저녁 세끼를 모두 먹을 수 있었다. 아침으로 제공하는 해장 라면은 그 맛이 기가 막히단 소문에 한 번 먹어보려 시도했으나, 인기 메뉴라 줄이 너무 길어 포기한 적이 한두 번 있다. 대신 누룽지를 먹었는데, 점심보다 맛있었다. 요즘은 점심도 맛있게 나와서 웬만하면 외식을 안 하지만 예전엔 먹기 힘들 만큼 고역인 때도 있었다. 일이 바쁘거나 너무 춥거나 덥거나 폭우가 오거나, 날씨 변수가 아니면 구내식당을 찾지 않은 기간이 꽤 길기도 했다. 그땐 아무리 구내식당이라도 이건 너무하다 싶은 날이 있었는데,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나 보다. 식기를 반납하고 나오는 쪽엔 그날 먹은 메뉴에 대한 소감을 남길 수가 있는데, 이런 코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김치 반찬 트리플 크라운 달성

닭 한 마리로 스무 명을 먹이는 기적


그렇다, 기적은 회사 구내식당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다! 누군지 천잰데?! 깔깔거리며 웃느라 메뉴에 대한 불만이 날아가 버렸다. 지금은 정말 소중한 구내식당이 되어 옛날 추억이 되었지만. 반찬통은 텅 비고, 나가서 먹기는 귀찮은 오늘 같은 날 회사 구내식당이 유달리 애틋하게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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