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일기
모태 신앙이나 다름없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성당보다 절집을 찾는 여행을 더 즐기는 편이다. 보수공사를 하거나 혹은 새로 건축한 절도 많다. 그 사이에도 절집을 둘러싼 산과 그 새 깊어졌을 나무뿌리, 새들에게 내어주는 나뭇가지는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넉넉하고 아름다운 산세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져 간다. 그러고 보면 나는 절집이 아닌 절이 자리 잡은 자연을, 그 공간이 좋아 절에 가는 것일까.
가장 좋아하는 절 집중 하나가 영주 부석사다. 대학 시절, 어느 늦여름 친구와 함께 갔던 부석사에서 본 석양이 생각나면 그 시간 속으로 마구 달려가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이름난 사찰들 대부분이 험한 길을 헉헉대며 땀을 쏙 뺀 끝에서야 짠하고 자태를 드러내는 것 과는 달리, 부석사는 친절하다. 올라가는 길의 평안함, 굽이 돌아가는 길의 나무 사이에서 아는 이가 나타날 듯한 다정함, 산세에 맞춰 제대로 자리 잡은 당간지주, 석탑, 기둥, 그리고 그 유명한 배흘림기둥, 오래된 나무가 풍기는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단단하고 날렵한 주심포의 강건함까지, 발 닿는 곳 모두가 소박하고도 화려함을 동시에 뿜어내고 있다.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모두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포근한 소백산 자락에 쏙 안기는 듯한 경관들에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 포근해지곤 했다. <화첩 기행>을 쓰신 김병종 선생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풍경이 아름다우면 아픔도 더 깊어지는 법인데,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왠지 그 아픔을 치료하는 기운을 지닌 듯하다.
다시금 '공간'이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오랜 시간 그 장소를 지킨 공간의 잠재력을 떠올려본다. 처음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그 저력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축적된 힘에 대해서. 재능과 노력의 토대 위에 시간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가볍지 않고, 그 힘은 더 강해진다. 20대를 돌이켜보면 뿌리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으로 그 시절을 보냈다. 뿌리내리기를 거부하고 두려워했다. 그 자체가 정체되고 소멸해 가는 징표라 생각했던 듯하다. 시간이 가면서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것만큼이나 그 자리에서 시간을 견디는 일에 시선이 가고,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 순간은 일상과 개개인의 아주 작은 삶의 부분인 경우가 많았다. 변화하는 세상의 에너지를 추적하고 탐색하고 충전하고자 동동거리다가도, 세상에서 멋진 일들을 해내는 삶의 궤적을 추적하다 보면 그 시간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진리를 확인하기도 했다.
견디는 시간의 가치를 알고, 자신만의 에너지를 축적하고 결국은 선한 결과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은 사람이나 건물이나 다를 바가 없구나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