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일기
초등학교 6학년 때 우연히 생활기록부를 보게 되었다. 교무실 책꽂이에 있지만 학생들의 손이 닿지 못하는 생활기록부에 무엇이 적혀 있을지, 궁금했다. 생활기록부에는 6년 동안의 성적뿐 아니라 나에 대한 담임선생님의 의견도 있었다. 성적표에도 적혀 있긴 했었지만 공개하지 않은 나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다. 성적이 우수하고, 태도가 좋고, 통솔력이 있고, 교우 관계가 원만하고, 독서 습관이 잘 되어 있고, 글을 잘 쓰고..... 이런 칭찬의 나열 끝에 내 눈에 걸리는 한 문장이 있었다. 아니 문장도 아닌 하나의 단어였다.
이기적임
2학년 담임 선생님이 칭찬 끝에 적어 놓은 이 단어를 보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듯했다. 훔쳐보던 생활기록부를 덮고 황급히 교무실을 나왔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생활기록부를 훔쳐본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2학년 고작 9살의 내가 어땠길래 나의 어떤 모습에서 선생님은 이런 평가를 하셨던 걸까. 내 생애 최초 나에 대한 솔직하고 객관적인(?) 평가 앞에 혼란스러웠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이었다. 분노와 수치와 억울한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더구나 그때까지 나는 최상위의 성적에 뭐든 잘하고 친구 많고 인기 있는 그런 칭찬받는 학생이었던 것이다.
그날, 집에 가자마자 엄마께 여쭤보았다. 단어의 의미를 몰라서 한 질문이 아니었다. 혹시나, 혹시나 내가 모르는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 이기적인 게 뭐야? 어떤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해?
자기만 아는 얌체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하지. 배려가 없는 사람.
내가 배려가 없는 얌체야?
거의 울먹일 듯 한 목소리에, 그제야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마는 누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냐고 물으셨다. 담임 선생님이 2학년의 나를 그렇게 평가했다는 말은, 엄마에게도 하기 싫었다.
아니, 내가 들은 게 아니라 선생님이 오늘 우리 반 아이를 야단치시면서 이기적이라고 혼내셨거든.
둘러댔지만 그날의 엄마는 눈치채셨을 거다, 아마도. 그리고 우리 딸은 착하고 배려심 많은 이쁜 아이지. 그런데, 너무 자기주장이 분명할 때가 있어. 그것도 좋지만, 어떤 때는 다른 사람 말도 들어줄 줄 알아야 해, 이런 말씀을 해 주셨던 것 같다.
집에서 나는 위로 오빠만 둘이 있는 막내딸이고, 학교에선 반장을 도맡아 했었다. 내 의견을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화법도 직설적이었다. 누구의 눈치를 별로 본 적이 없고 솔직했다. 똑 부러지게 말 잘한단 칭찬을 받았지 이기적이라 혼난 적은 없었다. 근심 걱정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6학년이 할 수 있는 정도의 고민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 의견 대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고민의 결과인지 성장에 따른 사회화 과정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변화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기적인 인간이 되는 건 싫었으며 그렇게 평가받는 건 죽기보다 싫었고, 내면으로나 외면으로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여러 유형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중에는 '가식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다. 말의 외형에 갇혀 나도 가식적으로 여겨지는 사람에겐 속정을 주지 않았다. 속마음을 알 길이 없으니 친해질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상당히 오랫동안 가식적인 상황, 가식적인 사람을 경멸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 연차가 쌓이며 오래 사람을 겪다 보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가식적인 게 나쁜 것인가? 회사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식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분명 진심이 아닌데 진심 인척 연기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 사람들과 일하다 보면 편안하고 매끄럽게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설적 비판이 아닌 업무적 능력에 버금가는 외교적 역량으로 어떻게든 성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었다. 지나치게 솔직하고 인간적이어서 일을 힘들게 만드는 사람보다 함께 하기 수월했다. 어느 순간, 서로에 대한 예의만 지키기만 하면 가식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회사란 우정이 아닌 일을 하러 가는 곳이고, 성과를 만들어 내야만 하는 곳이다.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일을 잘 진행하고 성과를 만들어내어 조직이 지속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가식은 그 과정에서 정말 큰 역할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김 혼비 작가의 <다정 소감>에 가식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다. 너무 공감이 가는 글을 재미있게 펼쳐서 고개를 한 스무 번은 끄덕이며 그 글을 읽었다.
지금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어본 적도 없고, 물어봤자 솔직하게 대답해 줄리 만무하다. 회사에서 동료/상사 평가를 통해 받는 피드백을 통해 그저 내가 같이 일하기에 나쁜 동료는 아니구나, 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이기적이고 오만했던 나는 어느 정도 가식적인 사회인이 되는 데 성공했을까? 회사 생활을 마치는 날 동료들에게 슬쩍 한 번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