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아침, 동도 트지 않은 새벽길을 함께 나섰다. 깜깜한 숲길을 헤드렌턴을 비추면서 새벽을 가르는 전사들처럼 그렇게 나아갔다. 그렇게 다섯 시간을 내내 걸었다. 어느새 붉게 떠오른 태양과 오늘 드디어 도착한다는 보이지 않는 기대와 흥분이 우리를 이어주고 감싸고 있었다.
몬테 델 고소의 언덕에서 천년의 도시 산티아고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정오에 있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우린 걸음을 쉬지 않았다. 막상 산티아고 표지판이 보였을 땐 부르고스나 레온에 도착했을 때와 크게 기분이 다르지 않았다. 미사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대성당 안으로 들어섰고,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서야 아, 드디어 여기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조금 시간이 남아 주위를 둘러보니 익숙한 얼굴들이 속속 성당으로 들어오고 있다. 간혹 마주쳤던 일본인 부부, 산티아고 도착 직전 함께 노래를 불렀던 한국 순례자들, 오며 가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길동무들, 그리고 나의 까미노 가족들. 그 가운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얼굴이 있나 싶어 오고 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다 제단 앞 가운데 자리에 앉아있는 조지와 얼린다를 만났다. 얼마나 보고 싶던 얼굴인지…
회사를 그만두고 까미노에 갔을 때 나는 고립되기를 원했다. 그동안 나와 엮인 일과 사람과 모든 환경으로부터 떨어져 완전히 혼자인 채, 철저히 외롭게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혼자 떠난 길에서 시간이 갈수록 나의 동행은 점점 늘어만 갔다. 새벽에 출발해 이르거나 혹은 늦은 오후에 도착한 숙소에서 빨래를 마치고 일기를 적다 보면 어느새 주위에 한 명 두 명이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어제 함께 차를 마시던 사람을 다음날 길에서 만나게 되고, 사람이 걷는 속도가 비슷하다 보니 또 다음 여정도 함께 하게 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도착지를 약속하고, 어느새 친구와 가족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먼 곳으로 떠난 안도감에 이전에 하지 않던 속 마음도 나누게 되고, 힘들고도 즐거운 여정을 함께하는 우정으로 나는 사람들과 더욱 밀착되어 갔다. 국적도 연령도 배경도 다양한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까미노 패밀리가 되어갔다. 강한 연대감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내가 까미노를 통해 받은 가장 큰 선물이었음을, 이제 돌이켜보니 알 것 같다.
미사 후 성당 앞에서 모두들 모였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뜨겁게 포옹하며 서로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지난 800km를 함께 걸은 사람들. 힘들 때 서로 손 내밀어 끌어 안아 준 이들. 서로 가장 순수한 마음을 나눈 내 사람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나 스스로가 참 사랑스러워졌다. 늘 한구석 부족하고 모자라서 마음에 차지 않던 나 자신이, 그 순간만큼은 그래 참 장하다, 잘 견뎠다 그리고 애썼다. 누구보다 가장 뜨거운 마음으로 스스로를 보듬고 싶었다
성당으로 갔다. 미사가 끝난 성당은 관광객과 기도하는 이들로 여전히 북적이고 있었다. 묵주기도를 마치고 가만히 앉아 야고보의 성상을 끌어안는 사람들과 기도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이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인도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중에서도 나는 더더욱 나약한 인간이다. 몇 년 전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 갔을 때, 희망봉에 올라 그런 생각을 했었다. 역사적인 배경을 뒤로 빼고, 그냥 길을 나선 사람의 마음에만 집중을 해 보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절경이지만, 이곳에 처음 도착했던 사람들은 육지가 나타나기까지 망망대해를 항해하며 얼마나 많은 불안과 좌절을 느꼈야만 했을까. 그들은 어떤 믿음과 희망으로 그 시간들을 견뎠을까. 구글 어스를 통해 내가 갈 지구 곳곳의 거리 풍경까지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지금도 열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낯선 곳에 대한 막연함이 이렇게 클진대. 그 막연함을 떨치고 불안과 두려움을 헤치며 바다로 나서게 한 인간의 마음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비단 돈과 재화에 대한 욕망뿐이었을까.
누구나 삶의 나침반을 필요로 한다. 지식이, 책이, 주위 사람이, 나의 일이 그 나침반이 되어줄 때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 방향은 나의 내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나를 보고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이 고요한 순례의 길을 나선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내가 지닌 나의 가장 순수한 부분에 그 마음의 소리를 고백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지금 내가 느낀 이 소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 희미해지고 잊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순간이 주는 경험의 무게와 느낌은 영원히 마음에 남아 가끔씩 나를 찾아올 것만 같다.
저녁을 함께하고도 성당 앞 광장에 모인 우리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라파엘이 한참 관심을 가진 티베트 불교, 대성당 건축의 위엄을 통해 불완전함을 극복하고 신의 완벽함에 도달하려 하는 인간의 끝없는 갈망, 휴머니즘과 성스러움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들이 광장의 바닥에 깔린 돌 사이로 스며들었다. 우리 앞에선 계속 노숙을 하며 순례를 하던 무리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자유와 고독, 충만과 허탈, 아름다운 평화와 지독한 쓸쓸함, 여전히 남아있는 그리움이 우리의 마음을 타고 광장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내가 좋아하는 회사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오랜만의 반가움, 여행 이야기에 대한 궁금함, 앞으로의 길에 대한 염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나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 담겨있는 선배의 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훌쩍 회사를 관둔 내게 용기 있다, 대단하다 란 말속에 담긴 선배의 현재의 고단함이 전해졌다. 저는요, 훌쩍 떠나는 것도 용기이지만 한 자리를 지키고 버텨내는 것이 훨씬 더 대단한 일이라 생각해요. 그 편이 저에겐 더 큰 용기이고요. 내 말을 듣는 선배의 미소가 진심으로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떤 형태로든 삶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 참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가감 없는 내 진심 그대로였다.
회사를 관뒀을 때 주변 지인들이 내게 부럽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용기 있다는 말도.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계속 다닐 용기가 없어 회사를 떠난 거였다. 내 길을 찾고 싶다는 대외적인 거창한 명분을 떠들었지만, 사실은 연차가 올라가면서 내가 책임져야 할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속마음도 있었다. 서른이 되었을 때 이제 정말 어른으로서의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다면 과장에서 차장이 되는 순간 업무에 대한 책임과 부담이 확 밀려왔다. 이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에 대한 두려움이, 과연 이 길이 내 길일까라는 고민의 명분을 덮개로 도망치고 싶던 마음도 일부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겠다. 그리고 돌아간 회사에서 십 년 동안 나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뻔하다고 생각했던 조직에서 새로운 배울 것들이 매일매일 생겨났다. 단순히 내 일만을 잘해 내는 것에서 일이 이 루어 게 하기 위해 조직과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움직여야 하는지, 함께 나아갈 목표를 공유하고 그 일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일을 해 나가야 하는지. 과장에서 회사 생활을 그만두었다면 알지 못했을 일들이다. 회사를 그만둘 때보다 더 큰 용기와 에너지를 지난 십 년간 쏟아부었다.
천 킬로미터의 까미노 데 산티아고 길을 동행하는 이들과 걸어 냈듯이, 내가 살아가는 현재도 또 탐색하고 준비하는 미래도 두려움 없이 용기 있게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