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일기
나는 예민하다. ‘감각’과 ‘감정’ 모두가 예민한 편이다. 예민한 감각에 대해 얘기해 보자면 우선 청각이다. 소리에 쉽게 피곤해진다. 큰소리가 울리는 공간, 특히 클럽이나 노래방에서 한 시간 이상 있다 보면 거의 탈진 상태가 된다. 악기도 전자음이 아닌 어쿠스틱을 좋아한다. 가요도 발라드나 클래식이 편안하다. 클래식 중에서도 피아노 협주곡을 제일 좋아한다. 이 예민한 감각 때문에 20대에 클럽을 딱 두 번만 가본건 지금도 억울하고 아쉽기만 하다. 고기 냄새에 민감해서 한국인의 보양식 곰탕 냄새를 견디지 못했다. 어릴 때는 겨울이면 내내 고아대는 고기 냄새를 피해, 코를 막고 밥을 먹거나 식구들이 먹고 난 후 따로 밥을 먹었다. 까탈스러운 내 후각은 바다에서 나는 모든 비린내에는 또 한없이 관대하니 예민함은 좋아함만 같지 못한 것인가 싶다.
감각도 예민하지만 감정도 그렇다. 어느 한 사람에게만 예민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내 주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가 그대로 느껴지고 짐작이 된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사람도 눈에 잘 들어오고, 미루어 짐작해서 미리 마음을 쓰기도 한다. 동네 지하철 1번 출구에 서 있는 빅이슈 판매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아파트 정문 입구에 트럭을 대놓고 모두지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소쿠리를 파는 할아버지 때문에 한광주리의 소쿠리를 사들고 간다. 좋은 일을 해야겠다거나 도와줘야겠다거나 이런 호혜적인 생각보다는 그냥 지나쳤을 때면 도무지 마음이 편하질 않다. 이 정도면 감각의 과잉상태다.
이런 자극이 피로가 되고 차곡차곡 쌓여 극에 달할 때면, 스위치를 끄는 시간이 필요하다. 엄마는 이런 나를 누구보다 잘 아신다. 학창 시절엔 일 년에 하루쯤 학교 가지 않고 땡땡이를 칠 수 있는 공식적인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셨다.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어느 날 나는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보고 싶은 책이나 만화를 마음껏 보며 좋아하는 김밥을 먹으며 뒹굴거렸다. 그 휴일 날이 일 년에 10번 보는 모의고사 중 하루였다. 매월 되풀이되는 모의고사를 여섯 번쯤 치르고 나면 내 안의 에너지가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한 번쯤은 되풀이되는 사이클에서 내려와 나를 다시 점검하고 충전할 시간이 필요했다. 휴식은 하루였지만, 그 하루 휴식으로 나는 두 달 이상의 호흡으로 다음을 준비할 수 있었고, 일 년 동안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어른이 되면서 스위치를 끄고 쉴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휴일에도 일 생각하지 않고 온전히 쉬기 위해선 집중할 다른 일이 필요했다. 사진 찍기, 베이킹, 가드닝, 클라이밍, 가죽공예, 커피, 여행 등 수많은 취미는 사실은 예민한 내 감정의 은신처였다. 액티비티로 충족되지 않을 때는 장소를 바꿔주었다. 내 삽십대는 제주도에 빠져 지낸 시기여서, 어느 한 해는 제주에 연세 집을 얻어놓고 휴일이나 휴가 때 지내기도 했다. 십 년 전 어느 날 출근길에 퇴사를 결심하고 바로 실행했던 것도 중간에 스위치를 끌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해 너무 지쳤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의식적으로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순간이 또 찾아오고 있다. 외부의 변화와 내 생애주기의 변화와 겹쳐서 오는 이 파장은 잠시의 휴식과 도피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이런 순간이 오리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어떻게 대면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십 년 전처럼 이번에 무작정 퇴사를 할 수는 없다. 내 머리를 꽉 채운 일에서 벗어나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다. 주변의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 보면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휴직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