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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otany 니오타니 Apr 05. 2022

고 김정주 회장을 추모하며

휴직 일기 

20년 동안 다양한 일들을 해왔다. 해외마케팅과 선행상품기획 분야에서 사회, 고객, 기술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의식주에 관련된 새로운 제품과 사업분야를 찾고 검토하는 업무는 힘들어도 재미있었다. 특히 기술의 적용은 스타트업에서의 움직임이 빨라 이 변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코로나가 시작되기 몇 년 전부터 외부 강좌와 행사에 참여해왔다. 삼성동에 위치한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의 커피클럽과 북클럽 및 각종 콘퍼런스, 네이버 주최 tech meets start-up , 그리고 기관의 조찬모임 행사까지 부지런히 알아보고 쫓아다녔다.  최전선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궁금했고, 기술과 아이디어를 바탕을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생각과 시야가 보고 듣고 싶었다. 특히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의 커피클럽은 웬만하면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해 그 전날 야근을 해도 수요일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삼성동으로 갔다. 사업을 돈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반짝반짝한 에너지에 매료되었다. 다들 발표도 너무 멋지게 프레젠테이션 해서 내 발표의 모자른 점도 알게 되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힘들었지만, 사람을 통해 얻는 에너지가 더 컸다. 인터넷과 모바일 그리고 AI, 내 인생에 세상을 크게 바꿀 이렇게 큰 웨이브가 세 번이나 있었는데, 그 파도에 한 번도 제대로 올라타 보지 못하고 기회를 흘려보낸 게 너무 아쉬웠다. 내 사업의 기회는 놓쳤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성장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스타트업계에 매료되는 것도 같은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내 이력의 궤적을 되돌아보았다. 해외마케팅을 하다가 상품기획으로 부서를 옮긴 것도, 상품기획 부서에서 선행 파트를 선호하는 것도 기업 내에서의 스타트업과 같은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면서 놓친 기회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아쉬운 일 하나가 게임회사로 이직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경력 입사 동기가  일 년을 채우자마자 게임회사로 이직했다. 이직 후에도 자주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나에게 그 회사로의 이직을 권했다. 마케팅 인력을 뽑는데 추천해 주겠다고, 훨씬 기회가 많은 곳이라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거라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게임은 전혀 할 줄 모르는 무관심의 영역이다. (게임회사의 광고는 좋아한다. 재미있으니까!) 유일하게 해 본 게임이 PC에 내장된 지뢰제거가 전부일 정도다. 나는 게임은 하지도 않을뿐더러 관심도 없는 영역인데 마케팅을 어떻게 하겠냐고 흘려들었다. 그 동기는 게임을 하고 안 하고 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몇 번이나 끌었지만 나는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그 후 게임업계는 승승장구 성장을 했고  동료는 몇 년 후 두둑히 스톡옵션을 받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그제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게임 산업은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의 최대 수혜주로 새로운 기술을 제일 먼저 적용하고 사업화하는 테스트베드나 마찬가지였다. 이 재미있는 영역을 못 알아본 나의 무지와 편견이 아쉽기만 하다. 


게임과의 인연은 이 정도지만  내가 너무 닮고 싶은 롤모델 중 한 사람이 김정주 회장이었다. 역삼동 단칸방에서 시작해 제국을 이룬 실력, 황제처럼 군림할 법도 하건만 백팩 메고 매번 다른 도시를 넘나들며 다양한 인연을 만나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따뜻함,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고 어린이를 위한 재활병원까지 지원했던 기업인인 김정주 회장. 각종 행사에서 네트워킹을 통해 그와 관련된 일화를 들으며, 다시 태어나면 그 처럼 살아보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빛과 열린 마음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던 그의 부고를 듣자니, 일면식도 없지만 마음이 너무 아파왔다. 모두가 기억하는 밝은 에너지와 자신감 뒤에 어떤 어둠과 고통이 있었던 것일까. 스타트업 대표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과 압박감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더 큰 고통은 이렇게 힘들어도 내색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심리적인 불안이 알려짐과 동시에 투자와 거래는 물 건너가고 함께 하던 동료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내가 팀원일 때와 리더일 때 느끼는 일에 대한 책임감은 정도가 다르다. 내 일만 잘해 내면 되는 역할에서 결과를 이끌어내고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주는 부담감에 밤잠을 설치곤 한다. 실패해도 월급과 자리가 보장된 내가 느끼는 무게가 이 정도인데 더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한다면 내가 과연 그 압박감을 견딜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그 어려운 과정을 딛고 시작하고 도전하는 기업인의 실질적인 멘토와 에인절(투자자)이 되어주셨던 분. 직간접적 인연을 맺은 이들의 끊이지 않는 절절한 애도를 보자니 다시 마음이 숙연해온다. 많은 것을 해내느라 애쓰셨습니다. 아마 가신 곳에서도 호기심 어린 눈길로 또 새로운 일을 벌이실 것만 같아요. 가끔은 편히 쉬세요. 그리고 그곳에선 행복하시기를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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