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일기
벨기에에서 온 헨리는 법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인데,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일 년간 교환학생으로 살라망카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학기를 마치고 7월 초 벨기에로 돌아가기 전, 남은 일주일의 시간을 까미노의 마지막 구간을 걸으러 왔다. 우연히 우리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고, 자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헨리는 한국의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소비문화, 남북문제 등 전반에 걸쳐 다양한 질문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개 식용 문화에 대한 진실도 알고 싶어 했다.
한국에선 개를 음식으로 먹는다며?
응. 나는 안 먹어봤지만, 우리 가족이나 친구들 중에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
그럼 집에서 키우는 개도 먹는 거야?
예전 시골에선 그랬었지. 농경사회에서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고기였거든. 그런데 지금은 키우는 개는 안 먹고, 식용으로 따로 사육하는 개들이 있다고 들었어.
헨리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 나라마다 환경에 따라 만들어진 문화가 있을 테니까. 이해 못 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무조건 비난부터 할 순 없겠지. 사실 벨기에에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풍습이 있긴 해. 우린 고양이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알다시피 고양이는 번식력이 엄청나게 강한 동물이거든. 그래서 일 년에 하루, 고양이를 죽여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날을 정해놓았어. 그날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지. 지금은 아니지만 그런 전통이 있었어, 우리도.
마침 그때 동네 고양이 한 마리가 야옹~ 우리 앞을 가로질러간다.
까미노가 걷기 좋은 이유는 걷는 구간의 대부분이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숲길과 흙길이어서기도 하지만, 마을이나 작은 도시의 차도를 지나갈 때도 차들이 늘 보행자를 우선시해서 마음 놓고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까지 스페인 운전자들의 태도가 보행자에 대한 배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헨리의 말에 의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스페인에서는 교통사고에 대한 제재가 심하고 벌금도 높은 편이라 했다. 특히 사람이 다치거나 생명을 잃게 될 경우, 벌금을 낼 돈을 벌기 위해 남은 인생을 평생 열심히 일해야 할 정도라고 했다. 그제야 약간 다혈질에 거친 듯 보이는 스페인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늘 양보해 주던 일, 그리고 횡단보도가 아니거나 신호가 바뀌지 않았을 때 갑작스레 건너는 사람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던 일들이 이해가 되었다.
다양한 문화와 지식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가 넓고 스페인어까지 구사할 줄 아는 헨리 덕분에 함께 걷는 길이 즐거웠다. 퀘벡 지방에서 온 라파엘이 내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려 하자, EJ는 대륙의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어 할 걸. (캐나다 사투리 가르치려 하지 말그래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ㅎㅎ), 하고 툭 던지던 헨리의 유머가 그립다.
레온 이후 계속 마주치는 레이철은 캐나다 위니펙 Winnipeg 시립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여름엔 연주회가 많지 않아 주로 여행을 하는데, 까미노는 2007년부터 르푸이에서 출발해 매년 한 구간씩을 걸어왔다고 했다. 작년엔 호주에 있는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느라 오지 못했고, 올해가 네 번째 산티아고까지의 마지막 여정이라 했다. 레온에서 레이철을 처음 본 순간부터 왠지 좋은 친구가 될 것 같단 생각을 했었다. 레이철에게선 뭐랄까 기품이 있고 아름다우면서도 강한 자아가 느껴졌다. 현명해 보이는 그녀의 하얗고 동그란 얼굴은 늘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 그렇다고 야생의 거친 느낌도 아닌 그녀만의 건강하고 사려 깊은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레이철에게 그녀의 일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레이철은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일상에 묻혀 정체된 기분이 들 때, 까미노를 걸으며 좋은 음악적 영감을 얻어간다고도 했다. 나는 까미노가 내 인생의 답을 줄 것이라 기대하진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레이철과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고 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라 했다. 바쑨 연주자라는 그의 남자 친구를 만날 때까지의 긴 기다림, 과연 나에게 right person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이야기.. 이런 시시콜콜한 오랜만에 동성 친구와 나눠보는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매일 아름다운 들꽃을 꺾어 함께 걷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던 프랑스 간호사 아저씨 제라르. 내가 부상을 입었을 때 나를 안심시켜 주던 분이었다. 매일매일 걷던 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선물로 받는 낭만적인 호사를 선물해 주시던 분.
내가 다쳤을 때 물리치료를 해준 귀여운 친구 라파엘도 잊을 수 없지. 한글을 가르쳐 달라는 라파엘의 청에 송창식 씨의 가나다라마바사를 부르며 숲길에서 우에우에우에에 후렴을 함께 부르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서울에 와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함께 템플스테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까미노의 추억을 되새겼다.
페이스북으로 가장 많이 교류하는 브라질리언 발터, 그리고 나의 스위스 언니 아드리안... 가족처럼 지내던 나의 까미노 패밀리의 얼굴이 어제처럼 선명하다. 함께 부르던 노래, 서로에 대한 배려, 마을마다 있던 성당에서 힘께 드리던 기도. 친족의 죽음을 알고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던 린의 얼굴도 떠오른다.
길 위에서 마주하는 기쁨과 평화,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과 죽음.
신은 결코 우리에게 지속되는 일상의 평화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순간은 늘 움직이고 변화하며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서 우리를 이쪽저쪽으로 튕겨대는 것만 같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고 돌아봤을 때 아름답게 간직할 추억을 허락하셨다. 그러니까 어쩌면 그 상황보다는 그 상황 안에서의 나의 마음이 더욱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