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일기
오데뜨를 처음 만난 날은 길을 걸은 지 19일째 되는 날이었다. 까르리온에서 혼자 일찍 출발해 하루 종일 혼자 걷고, 알베르게에 묵었던 날이었다. 조지와 빨래를 마치고 정원에 앉아 조용히 일기를 쓰는 내게 오데뜨가 다가왔었다. Can you speak English? 오데뜨가 내게 건넨 첫마디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고, 자리에 앉은 오데뜨가 여러 명을 함께 데리고 자리에 앉을 때만 해도 그날 만은 조용히 지내고 싶었던 나는 좀 귀찮은 기분이 들었었다. 4월에 여행을 시작해 프랑스 남부, 르 푸이로부터 시작된 오데뜨의 여정은 당시 두 달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바지, 수건, 시계를 잊어버렸지만 평생 잊지 못할 마음의 울림을 준 친구도 많이 만났다고 했다. 신지 않는 레깅스를 여벌로 가지고 있었던 나는 오데뜨에게 하나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날 사하군에서 출발해 아드리안과 함께 길 가의 작은 꽃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보고 사진을 찍고 있는 오데뜨를 다시 만났을 때, 왠지 모르지만 참 자연스럽고 이 길과 조화로워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천천히 느릿느릿 걸으며 길가의 이름 모를 들꽃들을 찍어 아드리안과 함께 ‘까미노의 들꽃’이란 사진집을 내겠다고도 했었다. 2주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오데뜨의 71번째 생일이 있었고, 마음과 눈물을 나눌 시간들이 있었으며, 어머니와 같은 사랑으로 나를 보살펴준 고마움이 있었다. 오데뜨가 나에게 해주는 말들은 정말 우리 엄마가 나에게 늘 해주시는 말들과 너무나 똑같아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오데뜨는 1995년에 치과 치료를 받던 중 의사의 실수로 수은 중독에 걸렸다고 했다. 그때 생을 포기할 까 싶을 정도로 괴로웠고 위독한 상황이었는데 남편의 지극한 간호로 그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남편을 몇 년 전 저 세상으로 보내고, 이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70세가 넘었지만 오데뜨는 푸근함과 동시에 강인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했다.
이야기를 듣는 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가족을 잃은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왠지 감정을 추스리기 어려웠다. 그때 오데뜨가 다가와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내 귀에 속삭였다. He is always inside you.
어느 날 오데뜨에게 사고가 있었다. 점심을 먹고 길을 가다가 멋진 분수를 보던 오데뜨가 길 위의 턱을 보지 못하고 그만 걸려 넘어진 것이다. 넘어지면서 갈비뼈를 그 모서리에 부딪힌 듯했다. 무거운 가방에 짓눌려 우리가 달려가 일으킬 때까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릎은 까져서 피가 흘렀다. 마음이 다급했다. 다행히 오데뜨의 가방에는 간호사 출신답게 온갖 비상약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선 다친 다리에 약을 바르고 거즈를 붙인 뒤, 오데뜨 가방의 짐들을 덜어서 나누었다. 걸을 수 있는 것을 보니 뼈가 부러지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드리안은 지나가는 이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오데뜨 혼자 부상을 입었다면 어떻게 할 뻔했냐며, 우리는 함께 가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다른 일행이 오데뜨와 함께 병원에 간 사이 빨래까지 마치고 길이 보이는 정원의 테이블에 앉아 일행을 기다렸다.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아드리안에게 전화를 해도 받질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만약 상태가 심각하다면 어쩌지? 일흔이 넘은 할머니가 세 달에 가까운 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으니 큰 병이라도 났으면 어쩌나,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어제저녁 함께 모여 노래하고 웃었던 일들이 먼 옛날 일들만 같았다.
다른 여행자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어렴풋이 마을로 들어서는 오데뜨 일행이 보였다. 단박에 그들에게로 뛰어갔다. 병원에선 넘어질 때 충격으로 갈비뼈에 금이 갔을 수 있으니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단다. 그런데 결과를 판독하고 검사를 하려면 하루 이틀 정도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오데뜨는 산티아고까지 얼마 남지 않은 일정을 포기할 수 없다며, 짐을 택시로 보내고서라도 계속 우리와 걷겠다고 했다. 아, 이 할머니의 고집이란. 걱정과 염려, 반가움과 안도가 동시에 들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오데뜨가 묵을 마을 끝 다른 알베르게까진 거리가 꽤 되었다. 나는 오데뜨의 가방을 받아 들고 일행과 함께 숙소를 향했다. 왠지 우리가 정말 가족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숙소로 돌아와 시원한 콜라 한잔을 들고 정원에 앉았다. 오랜만에 가지는 혼자만의 시간이다. 어느새 한 달이 훌쩍 넘은 이 길에서의 여정이 스쳐 지나간다.
혼자 출발한 이 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졌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길 같으면서도 매일매일 길 위의 풍경은 새로웠고, 그 길 위의 추억도 모두 달랐다. 예측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만나기도 했고, 기대하지 않았던 손길에 위안을 얻기도 했다.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나 꼭 의도대로만 되지 않는 인생처럼, 그러나 그 의도되지 않은 이면에 뜻밖의 선물을 숨기고 있는 일상의 삶과 같이 풍성한 선물을 한 아름 받기도 했다.
오데뜨는 항상 나를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진정한 사랑을 구하기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라.
진정한 사랑은 잠깐의 육체적 사랑이 주는 기쁨이 아닌 마음 깊은 곳의 지극함을 함께 나누는 것이란다. 너의 하나밖에 없는 것을 기꺼이 주고픈 마음, 그 마음을 받았을 때 감사할 줄 아는 마음. 하느님은 늘 너의 마음속에서 너와 함께 계신단다.
오데뜨의 나를 위한 기도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아멘을 되뇌곤 했었다.
식사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7시에 시작되는 알베르게 식당의 저녁을 먹으려면 지금 신청을 해야 한다. 오늘은 혼자구나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정원 입구로 라파엘과 헨리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머지 일행도 모두 함께 이리로 오는 중이란다. 와~ 갑자기 쓸쓸함이 기쁨으로 바뀌었다.
어제처럼 우린 자리를 잡고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라파엘은 어제의 ne me quit pas에 이어 암스테르담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이젠 다른 테이블의 순례자들도 함께 우리의 합창에 동참했다. 오데뜨의 건강과, 새로이 함께 하게 된 헨리에 대한 환영, 우리 모두의 무사함을 기원하며 건배를 했다.
오늘의 걱정, 긴장과 매일매일 짐을 꾸려 길을 나서야 하는 나그네의 고단함, 다시 지금을 함께 하는 우리의 기쁨이 노래 가락을 타고 저 멀리멀리 저녁노을 속으로 흩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