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eotany 니오타니 Aug 14. 2022

달이 차오른다, 가자

이틀 전 폭우가 가신 뒤 밤 산책에서 달을 만났어요. 떠 있는지 모르고 길을 건너다 나를 잡아 끄는 듯한 빛에 고개를 올려보니 두둥실 보름달이 빛나고 있었어요. 달의 아우라가 뭔가 다르다 했더니 추석을 한 달 앞둔 백중이었어요. 서늘하면서도 밝은 달빛은 왜 사람을 현혹할까요.


문득, 달이 차오른다, 가자! 를 외치던 장기하가 생각났어요. 그 옆에서 알듯 말듯한 춤사위를 펼치던 미미 시스터즈 언니들도요. 그들은 모두 어디로 향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목적지가 어디냐가 중요한 건 아닐지도 몰라요. 거기가 어디든 상관없었을지도 몰라요. 여름밤에 느끼는 생명은 어느 때보다 강해서 거기에 달빛까지 쏟아진다면 그 밤의 어둠으로 사라져 버려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니까요. 거기에 달빛이 친구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란 영화도 생각났어요. 영화를 본 지 20년이 다 돼가는 작품인데 달을 볼 때면 자주 떠오르는 영화예요. 영화 속 주인공은 택시기사인데, 길을 잃을 때마다 달이 어디에 떠 있는지 위치를 보고 방향을 짐작해요. 어쩌면 방황하고 헤매는 사람들, 간절함이 있는 사람들이 잠 못 이루고 바라보는 대상이 달이어서 일까요. 지금처럼 정확한 내비게이션이 없어서 나올 수 있었던 낭만이 버무려진 코미디 영화였을 거예요. 


달은 예술가의 뮤즈로서도 그 존재감을 톡톡히 과시하지요. 전 어느 밤 새벽에 열린 창으로 달빛이 쏟아지던 순간을 잊지 못해요. 그 빛의 은은함과 애절함과 반대되는 담백함의 느낌까지. 반사적으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머릿속을 유영하기 시작했어요. 조각배가 뜬 루체른 호수 위에만 비치는 달빛까진 아니었지만, 올봄 구례 동정호에서 보았던 달빛 윤슬은, 이곳이 가상세계인가 싶을 만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어요. 


차올랐다 스러지고, 다시 태어나고, 주변과 어울려 변주할 줄 아는 것이 달의 매력 같아요. 늘 같지만, 또 같지 않는 아름다운 변화. 자연은 모두 능력이 있어요. 되풀이되는 것 같지만 늘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지요.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고 감탄해요. 어쩌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몰라요. 내가 스스로 설레고, 또 설렘을 주는 사람. 주변에 잘 스며들지만 존재감을 잃지 않고 싶은 사람. 한 번씩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 이런 모습이 억지가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과 같은 사람.


왜 달을 자꾸 쳐다보게 되는지, 달을 보며 잠시 생각해 보았어요.



(구례 동정호의 달빛 윤슬)




매거진의 이전글 호박잎과 초고오급커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