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울 Sep 30. 2022

닫는 말

현직 교사의 비거니즘 에세이 "무릎 내어주기"

  이 글을 쓰며 되짚어본 지난날들의 나는 매 순간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비거니즘을 의심하는 사람이었고, 후회하는 사람이었고, 오해하는 사람이었다. 이젠 비거니즘으로서 존재하는 사람이다. 어떤 독자들은 3년 전의 나처럼 비거니즘에 다가가길 망설이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독자들은 이미 실천의 길에 접어들어 정답 없는 고민들로 기꺼이 자신의 세상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내 변화의 자취를 따라가 보며 실천에 한 발 다가서길, 실천을 할 수 없다면 비건 앨라이부터 되어 보길, 혹은 실천이 조금은 덜 외롭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 비거니즘의 여정을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담아보았다.


  어쩌면 나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내 가까운 친구나 가족 중에는 비건이 없다. 비거니즘에 대한 글을 읽으면 주변 사람과 함께 비건이 되거나, 자신을 따라 가까운 타인이 비건이 되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애석하게도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3년이면 왜 그리 피곤하게 사냐는 사람들의 반응이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나는 여전히 이해받고 싶나 보다. 그들에게 뱉어내고 싶은 생각들을 삼키고 삼키다 결국 이렇게 글로 쓰고야 마는 걸 보니, 난 사실 세상을 위하는 마음보다 누군가의 온전한 인정에 애타게 목마른, 좁고 작은 사람이다.


  유심히 읽은 독자라면 몇몇 익숙한 단어가 돌연 낯선 단어로 바뀌어 쓰이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2019년 겨울, 나는 “물살이”라는 말을 알지 못했다. 그때의 경험을 담은 글엔 “물고기” 혹은 “생선”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참으로 이상한 말인데 이상한 줄을 모르고 살았다. 존재 자체가 고기라고 불린다니. 언어의 중요성을 자각하며 우유 대신 “소젖,” 달걀 대신 “닭알”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서로 뜻은 같지만 후자는 비가시화된 동물의 존재를 또렷이 드러낸다. 동물의 수를 세는 말로는 “마리” 대신 “명”을 썼다. “목숨” 이란 뜻이니, 인간과 동물 모두를 세기에 적절한 표현이다. “비건다운 비건”이 아니란 두려움에 갇힌 시기에는 “비건 지향인”이란 말을 썼지만 이후엔 “비건”이란 말을 썼다. 물론 전자가 비거니즘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비거니즘을 정치적 입장으로서 이해하기 시작하며, 나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말로는 비건이 더 적절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 불완전한 경험을 세상에 꺼내 놓는 것이, “한 명의 완전한 비건보다 백 명의 불완전한 비건”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에는 조심스럽다. 누구도 완전한 실천을 할 수 없고, 현실적인 제약으로 실천할 수 없는 이들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표현할 때 놓치는 것들이 늘 있기 마련이다. “백 명의 불완전한 비건”은 불완전하되 고민을 멈추지 않는 존재를 말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그저 불완전함에서 멈춰도 괜찮다고 이해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비건이 어렵다면 비건 앨라이부터”라는 나의 표현도 모자라다. 비건 앨라이가 어떤 안주 가능한 지점으로 인식될까 염려된다. 비건도, 비건 앨라이도, 계속해서 고민하고 변화하는 존재들이라 믿는다. 기존의 언어에 갇히지 않고 비거니즘의 언어를 더 정교하게 쌓아 올리는 일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밴드 “양반들”의 보컬이자 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인 전범선은 비거니즘 팟캐스트 <흉폭한 채식주의자>에서 라이프스타일로서 비거니즘과 정치적 입장으로서 비거니즘 사이에 구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라이프스타일로서 비거니즘은 동물성 식품을 모두 배제한 완전 채식 혹은 제로웨이스트라는 실천에 방점을 둔다. 빈틈없는 실천이란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건 지향”이란 말을 쓰기도 하고, 허용하는 동물성 식품의 범주에 따라 락토오보, 페스코테리언, 플렉시테리언 등 다양한 채식 단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락토 오보, 플렉시테리언과 같은 채식 지향 단계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입장으로서는 오로지 비거니즘만이 가능하다. 인간의 동물 지배와 착취에 반대하는 급진적인 사유 말이다.


  글을 쓰기로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라이프 스타일로서의 비거니즘까지만 담아야 할까? 정치적 입장으로서 비거니즘에 대해 이야기해도 괜찮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7조 2항에서 교사를 비롯한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자”여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5년 차 교사가 된 나는 그에 의문을 품는다. 물론 학생들 앞에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발언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곧 정치인데, 학교에서 삶을, 정치를 말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교사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고통과 차별과 착취 앞에서 중립은 없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정치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선을 넘기로 했다. 비거니즘으로 중립 없는 정치를 말하기로 했다.


  아직도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은 지 잘 모르겠다. 영어선생님이라기엔, 솔직히 영어보다 다른 공부가 더 재미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다른 과목을 공부하면 잔소리하면서 나는 자투리 시간이 생길 때 교실에서 영어가 아니라 기후정의와 동물권을 이야기한다. 문법 예문을 만들 때면 살처분과 공장식 축산에 대한 문장을 은근슬쩍 끼워 넣는다. 내 이야기는 수능에도 내신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스스로 선생 자격이 있나 되묻는다. 하지만 영어는 언어고, 언어는 도구다. 도구 자체를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도구로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는지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영어를 통해 새로운 세상에 접속하도록 돕는 선생님이 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만 같다.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고, 내게 주어진 책임부터 다 하려면 영어 문제 잘 푸는 법도 더 잘 가르쳐야 할 것이다. 갈 길이 멀다.


  동물과 지구를 살리고 싶어 비거니즘을 시작했지만, 비거니즘이 나를 살리기도 했다. 불안에 허덕이던 날들이 많았다. 불안을 끌어안은 엄마가 미간을 찌푸린 채 깎아준 사과를 먹고 자라서였다고 생각한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동물에게 가해지는 억압의 사슬을 따라 구조적 문제로 시선을 이동시키며, 내 개인적 상처를 설명하는 언어도 풍부해졌다. 개인의 불안은 사회의 폭력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과 가족의 환부에 묻어난 사회적 상흔이 보이기 시작하니, 내 불안과 상처는 주변화된 타자를 헤아리는 상상력으로 전유되어갔다. 나는 여전히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지만, 비거니즘은 내 손에 그 불안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려는 생명력을 쥐어 주었다.


  인간과 동물이 맺는 관계를 재편하려는 급진적인 목소리는 결국 자기 치유를 향한 울림과도 공명한다. 주변화된 존재들을 살리는 일, 세상의 미래를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상상해보는 일은 결국 자신의 치유와도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폭력을 걷어내지 못한다면, 불안하지 않은 개인의 삶도 없다는 이치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불안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불안한 존재들을, 그 불안이 어디서 왔는지를 마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무너지지 않고 더 오래, 잘 살고 싶다.





참고문헌


단행본 및 정기간행물


<나의 비거니즘 만화> 보선, 푸른숲, 2020.


<동물 학대의 사회학> 클리프턴 P.플린, 조중헌(옮긴이), 책공장더불어, 2018.


<동물해방> 피터싱어, 김성한(옮긴이), 연암서가, 2012.


<동물의 권리> 피터싱어, 엘리자베스 드 퐁트네, 보리스 시륄닉, 카린 루 마티뇽, 유정민(옮긴이), 이숲, 2014.


<릿터 17호: 비거니즘>, 민음사, 2019.


<묻다> 문선희, 책공장더불어, 2019.


<물결 2021년 가을 호: 물살이>, 두루미, 2021.


<물결 2022년 봄 호: 교차성x비거니즘>, 두루미, 2022.


<비건 세상 만들기> 토바이어스 리나르트, 전범선, 양일수(옮긴이), 두루미, 2021.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전범선, 포르체, 2022.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멜라니 조이, 노순옥(옮긴이), 모멘토, 2011.


<짐을 끄는 짐승들> 수나우라 테일러, 이마즈 유리(옮긴이), 오월의 봄, 2020.


<Beyond Beliefs> Melanie Joy, Roundtree Press, 2017.



영화 및 방송


<더 게임 체인져스> (2018)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 (2017)


<카우스피라시> (2014)


<씨스피라시> (2021)


<MBC 창사특집 UHD 다큐멘터리 휴머니멀> (2020)


<KBS 2TV 거리의 만찬 44회 방영분> (2019)


닷페이스 유튜브 영상 <플라스틱, 이젠 진짜 답이 없습니다. 재활용도 안 된대요.> (2020)




현직 교사의 비거니즘 에세이 "무릎 내어주기" 연재는 이렇게 종료됩니다. 그동안 구독 눌러주시고 읽어주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