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이 된 지 반년이 되어 간다. 서른이 되면 뭐라도 하나 이루었을 줄 알았는데, 뭘 이루긴커녕 가지고 있던 것도 잃어버리고 있다. 제 앞가림 정도는 하는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앞가림도 못하고 쓸데없이 아재 감성만 늘었다.
20대 때는 하루하루 나이 먹는 게 두려웠다. 스무 살에 대학 못 들어가면 큰 일 나는 줄 알았고, 스물한 살, 스물두 살에 어학연수 못 가고 스물세 살에 인턴 못하고 스물네 살에 졸업 못하고 스물다섯 살에 취업 못하면 세상이 망하는 줄 알았다. 스물여섯 살에 졸업한 내가 뒤처졌다고 생각했다. 스물일곱 살에 퇴사하고 스물여덟 살에도 백수인 내가 사회 부적응자인 줄 알았다. 스물아홉 살에 모아놓은 돈도, 차도 없는 내가 실패자라 믿었다.
실패자로 맞이하는 나의 서른이 열다섯에 상상했던 서른과는 너무나 달라, 그때의 나에게 미안했다. ‘미안, 수연. 네가 꿈꾸던 것들 하나도 못 이뤘어.’
30대를 코앞에 둔 스물아홉의 어느 날, 취미로 다니던 화실의 선생님과 서른을 주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30대 중반의 선생님은 서른 살 때 너무 즐거웠다고 했다.
“왜요? 보통 우울해하던데. 다들 갑자기 ‘서른 즈음에’ 들으면서 청승 떨잖아요.”
냉소적으로 물어보자, 선생님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30대 중에 막내잖아요.”
'생각해 보니 그렇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발상이었다.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대수롭지 않게 30대를 맞이했다.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청승 떨지도 않았다.
'0'은 비어있는 숫자다. 비어있기 때문에 뭐든지 채울 수 있다. 그런데 왜 스무 살의 '0'은 채워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이고 서른 살의 '0'은 채우지 못한 실패일까. 오히려 '2'보다는 '3'이 안정적이지 않나? '3'은 완전한 숫자잖아. 삼위일체, 삼세판, 삼총사, 철인 삼종경기, 삼시 세끼, 삼다수...... 는 아닌가.
서른이 된 지금, 실패할까 두려워 도전조차 못했던 길을 가보기로 했다. 비어있는 내 '0'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채워보기로.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다.
이 얘기를 들은 누군가는 말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회사나 열심히 다니라고, 이제 와서 늦지 않았냐고. '3'이라는 숫자가 주는 안정감 덕분인지, 가진 게 없어 잃을 것도 없어서인지, 나이 들어 뻔뻔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얘기들이 딱히 상처가 되지도 방해가 되지도 않았다. 내 갈 길이나 잘 가면 그만이다.
'응. 넌 그렇게 살아. 난 30대 중에 막내니깐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