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론트 데스크
호텔에서 일한다. 그렇지만 누군가 '그럼 호텔리어세요?'라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호텔리어라 하면 세련되고 친절하고 전문적으로 들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프론트 데스크에 있다 보면 저 멀리서 손님이 걸어오는 모습만 봐도 느낌이 온다.
'아, 쉽지 않겠구나.'
지금 시간은 오전 11시, 체크인 시간은 오후 4시다. 분명 지금 바로 체크인해달라고 하겠지.
"지금 체크인돼요?
마음 같아선 안된다고 하고 싶지만 그러면 컴플레인을 받을 확률이 높다. 학습된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확인해드릴게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손님이 말해준 이름으로 예약을 검색한다. 이미 몇 번의 투숙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프로필에는 지난 투숙 때 응대했던 선배들이 남겨놓은 코멘트가 한가득이다.
Pay Attention. 까다롭고 요구사항이 많으심. 체크인 시간 전에 오셔도 웬만하면 바로 체크인해주세요. 객실에 가습기 넣어주시고, 물도 추가로 네 병 더 넣어주세요. 기타 등등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지. 스스로의 눈썰미에 감탄하며 바로 체크인 가능한 방이 있는지 검색해본다. 아직 준비된 객실이 없다. 별로 죄송하진 않지만 데스크에 납작 엎드리며 지금은 체크인할 수 있는 방이 없다고 죄송하다고 말한다.
"저, 골든데요?"
골드, 호텔의 멤버십 등급 중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이다. 골드 멤버 혜택 중 하나는 객실이 가능하면 얼리 체크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골든데 왜 얼리 체크인 안 해줘요?"
안 해주는 게 아니라 못해주는 것입니다만. '가능하면'이라는 문구를 대부분의 손님들은 읽지 못한다.
다시 한번 죽을죄를 지은 사람의 표정을 지으며 정비가 끝난 객실이 없어서 지금은 어렵다고 말한다. 바로 청소해서 적어도 1시에는 들어갈 수 있게 준비해놓을 테니 짐 맡겨놓고 1시에 와서 객실 키만 받아가면 어떻겠냐고 대안을 제시한다.
"그럼 두 시간 동안 어디 있으란 말이에요?"
이쯤 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그런 것까지 내가 정해줘야 한단 말인가.
골드 멤버의 또 하나의 혜택은 객실 업그레이드이다. 물론 그 또한 가능할 때만. 업그레이드를 받으면 라운지도 이용할 수 있다. 객실 업그레이드를 해주고, 라운지는 원칙적으로 체크인 이후에 이용 가능하지만 이번에는 체크인 전에 쓸 수 있게 해 줄 테니 거기서 기다리는 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말투는 친절하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다는 게 거울을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손님은 '진작 그럴 것이지'란 표정으로 마지못해 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아니, 받아들이는 척한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애초에 일찍부터 라운지를 즐길 심산으로 체크인 시간보다 훨씬 전에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손님이 라운지에서 대기하는 동안 객실 정비를 마친다. 체크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손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저 1508혼데요. 방 좀 바꿔주세요."
"혹시 어디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신가요?"
"뷰가 왜 이래요?"
호텔 객실 뷰는 두 타입으로 나뉜다. 시티뷰와 오션뷰. 오션뷰가 약 3만 원가량 더 비싸다.
"고객님께서 예약하신 타입이 시티뷰여서 그렇게 배정해드렸어요. 체크인 때도 시티뷰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저 골든데 업그레이드해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골드 셔서 처음에 예약하신 디럭스룸에서 이그제큐티브로 업그레이드해드린 거예요. 고객님. 그래서 라운지도 이용 가능하신 거고요."
"그럼 하는 김에 뷰도 해줘야죠. 여기 뷰때문에 온 건데."
'그럼 처음부터 오션뷰로 예약하시던가.'
목 끝에 걸리는 말을 간신히 밀어내고 최대한 정중하게 말한다.
"가능한 객실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뚝-'
'제발 대답이라도 하고 끊어줬으면...'
매니저에게 상황을 보고하니 지친 목소리로 그냥 해주라고 한다.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프론트 데스크에서 근무해온 그는 이 상황에 너무나도 익숙한 듯 보인다. 이런 일을 대비해 미리 홀딩해두었던 오션뷰 객실을 그 손님에게 배정한다.
객실을 옮겨주며 이번에만 특별히 업그레이드해주는 거라고 생색을 내보지만 다시 한번 "저 골든데요?"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네. 그래요. 황금이시군요.
다음날 오후 12시, 체크아웃 시간이다. 간밤에 투숙했던 손님들이 프론트 데스크로 내려와 객실 키를 반납하고 요금을 정산한다. 황금 손님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래.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이 정도는 나도 융통성 있게 넘어갈 수 있지.'
그러나 오후 1시가 되도록 황금 손님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다. 혹시 데스크에 들르지 않고 바로 체크아웃을 한 걸까 싶어서 객실로 전화를 걸어본다. 첫 신호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네."
"고객님, 프론트 데스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체크아웃 시간이 12시인데 지금 오후 1시여서요. 혹시 몇 시쯤 체크아웃하실 예정인지 여쭤보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왜 안 나와? 언제 나올거야?)"
"한 4시?"
"4시요?"
"네."
"고객님, 저희 체크인 시간이 4시예요. 뒤에 다음 예약도 있어서 4시는 어려우시고 3시까지 레이트 체크아웃 도와드려도 괜찮으실까요?
"4시 안돼요?"
"네. 죄송합니다. 고객님."
"그럼 3시에 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뚝-'
어법에 맞지 않는 과한 존댓말과 전혀 죄송하거나 감사하지 않아 보이는 인사를 섞으며 적어도 3시에는 방에서 나올 수 있도록 손님을 어르고 달랜다. 4시 체크인, 12시 체크아웃인 호텔에 11시에 와서 4시에 나가겠다니. 가끔 너무하다 싶은 사람들이 있다.
3시가 지나도 손님이 프론트로 내려오지 않아 다시 객실로 전화를 건다. 이번에는 받지 않는다. 하우스키핑에 부탁해서 확인해보니 객실엔 아무도 없다고 한다. 체크인할 때 오픈했던 카드로 객실료를 마감한다.
'제발 가면 간다고 말 좀 해주고 갔으면... 그래도 이제 끝났다.'
더 이상 그 손님과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홀가분하다. 오랜만에 진심에서 우러난 친절과 미소로 다음 손님을 맞는다.
며칠 뒤, 출근하자마자 매니저가 호출한다.
"이 손님 기억나?"
이름을 한참 들여다보다 그때 그 골드 손님임을 알아챈다.
"네. 기억나요."
"손님이 글 썼어."
"뭐라고 썼는데요?"
골드인데 얼리 체크인도 안 해주고 오션뷰로 업그레이드도 안 해줘서 기분이 나빴음. 체크인하는 직원 표정도 마음에 안 들었음. 골드인데 레이트 체크아웃도 안 해주고 얼른 나오라고 자꾸 전화로 닦달함. 플래티넘 아니라고 무시하는 것 같아 투숙하는 내내 너무 불편했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호텔리어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