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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욘 May 13. 2020

나의 봄은 멀미로 어지러웠다.

난춘 (亂春) - 새소년

오 그대여 부서지지 마
바람 새는 창틀에 넌 추워지지 마
이리 와 나를 꼭 안자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어릴 때는 차만 타면 심하게 멀미를 했다. 어디선가 새어 나오는 기름 냄새, 퀴퀴한 먼지 냄새, 답답하고 좁은 의자, 좌회전 우회전할 때마다 좌우로 흔들리는 몸, 예기치 못한 급정거 또는 급발진,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마다 흔들리는 차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멀미가 밀려오면 엄마 무릎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얼른 도착해서 이 멀미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봄이 오면 차를 탔을 때와 같은 멀미를 느낀다. 봄에는 꽁꽁 얼었던 세상이 녹고 새로운 생명이 꿈틀거린다. 봄은 시작이고 희망이고 젊음이고 낭만이고 가능성이라 하지만, 갈 길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작은 버겁기만 하다. 목적지는커녕 방향도 정하지 못했는데 남들 다 가니 일단 따라가라고 등 떠밀린다. 얼른 타라고, 놓치면 큰일 난다고 다그치기에 이미 만원인 버스에 억지로 몸을 욱여넣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서로를 밀치며 간신히 멀미를 참는다. 할 수 있는 건 모든 감각을 차단한 채 그저 흔들리는 대로 부유하며 차가 멈추기만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멀미는 시각 자극과 평형기관의 감각이 통일되지 못해 생긴다고 한다. 들이치는 자극을 차단하기 위해 높게 벽을 세우고 방어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속은 그저 방치해뒀다. 어떠한 열정도, 의지도, 욕망도 느끼지 못했다. 죽고 싶지도, 살고 싶지도 않았다. 더 알고 싶은 것도, 더 느끼고 싶은 것도 없었다. 과거가 후회되지도, 미래가 기대되지도 않았다. 그저 남들 가는 대로 흘러가기만 하려 했는데 밀려오는 무력감에 잠겨버렸다.


멀미를 느끼지 않는 법은 직접 운전하는 것이다. 시각 자극과 전정 자극이 일치하지 않아서 어지러운 것이라면 그 까짓 거 일치시키면 그만이다. 액셀을 밟을지 브레이크를 밟을지 정하면 된다. 천천히 갈지, 빨리 갈지, 지름길로 갈지, 조금 돌아갈지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 정하면 된다. 험한 길이 나오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속도를 늦추면 된다. 여전히 이리저리 흔들릴 수 있겠지만 정신은 더욱 또렷해진다. 힘들면 잠시 내려서 쉬어가면 된다. 길을 잘못 들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멋진 일은 언제나 잘못 든 그 길에서 일어나곤 했다. 갈 길을 모르던 나의 봄은 어지러웠지만, 여름에는 차를 몰고 바다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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