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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욘 May 13. 2020

나의 봄은 멀미로 어지러웠다.

난춘 (亂春) - 새소년



오 그대여 부서지지 마
바람 새는 창틀에 넌 추워지지 마
이리 와 나를 꼭 안자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새소년의 [난춘]이라는 노래가 어느 날 갑자기 음원사이트에서 사라졌다가 2020년 5월 10일에 재발매되었다. 따뜻한 봄 (暖春)인 줄 알았는데 어지러운 봄 (亂春)이었다.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라는 가사가 꼭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아서 위로가 된다.

어릴 때 차를 타면 멀미를 심하게 했다. 어디선가 새어 나오는 기름 냄새, 퀴퀴한 먼지 냄새, 답답하고 좁은 의자, 좌회전 우회전할 때마다 좌우로 흔들리는 몸, 예기치 못한 급정거 또는 급발진,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마다 흔들리는 차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멀미가 밀려오면 엄마 무릎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얼른 이 멀미가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봄이 오면 차를 탔을 때와 같은 멀미를 느낀다. 꽁꽁 얼었던 세상이 녹고 새로운 생명이 꿈틀거린다. 봄은 시작이고 희망이고 젊음이고 낭만이고 가능성이라 하지만, 갈 길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작은 버겁기만 하다. 목적지는커녕 방향도 정하지 못했는데 남들 다 가니 일단 따라가라고 등 떠밀린다. 얼른 타라고, 놓치면 큰일 난다고 다그치기에 이미 만원인 버스에 억지로 몸을 욱여넣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서로를 밀치며 간신히 멀미를 참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든 감각을 차단한 채 그저 흔들리는 대로 부유하는 것 뿐이었다. 엄마 무릎에 누워서 차가 멈추기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멀미는 시각 자극과 평형기관의 감각이 통일되지 못해 생긴다고 했다. 들이치는 자극을 차단하기 위해 높게 벽을 세우고 방어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속은 마냥 방치해뒀다. 어떠한 열정도, 의지도, 욕망도 느끼지 못했다. 죽고 싶지도, 살고 싶지도 않았다. 더 알고 싶은 것도, 더 느끼고 싶은 것도 없었다. 과거가 후회되지도, 미래가 기대되지도 않았다. 그저 남들 가는 대로 흘러가기만 하려 했는데 밀려오는 무력감에 깊이 잠겨버렸다.

멀미를 느끼지 않는 법은 간단하다. 직접 운전하는 것. 멀미가 시각 자극과 전정 자극이 일치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라면 일치시키면 그만이다. 액셀을 밟을지 브레이크를 밟을지 정하면 된다. 천천히 갈지, 빨리 갈지, 지름길로 갈지, 조금 돌아갈지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 정하면 된다. 험한 길이 나오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속도를 늦추면 된다. 여전히 이리저리 흔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정신은 더욱 또렷해진다. 힘들면 잠시 내려서 쉬어가면 된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땐 언제든 다시 돌아가면 된다. 그리고 혹시 어쩌면 잘 못 든 그 길에서 더 멋진 일이 생길지도 몰라. 나의 봄은 멀미로 어지러웠지만, 여름에는 차를 몰고 바다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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