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마지막 날,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 사주, 타로, 손금이라 쓰여있는 작은 콘크리트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연말이면 종종 사주를 본다. 100% 믿는 건 아니지만 믿고 싶은 말만 골라 믿으면서 적당한 위안을 얻는다. 신년 사주나 한번 봐볼까 하고 부스 문을 열었다. 1평 남짓한 부스에 앉아 사주명리학 책을 읽고 계시던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갑자기 매년 보는 사주 대신 한 번도 본 적 없던 손금 운세를 한번 보고 싶었다. 쭈뼛거리며 손을 내밀자 아주머니는 안경을 고쳐 쓰고 내 손을 잡았다.
“아이고, 아가씨 손이 왜 이렇게 거칠어. 핸드크림 좀 발라. 나처럼” 아주머니는 엄마처럼 잔소리를 했다. 무슨 크림을 쓰시는진 모르겠지만, 아주머니의 손은 갓 태어난 아기 손처럼 보드라웠다. 아주머니는 서랍에서 돋보기를 꺼내 들고, 내 손바닥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길가에 쪼그려 앉아 뙤약볕에서 개미를 관찰하는 초등학생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개미집보다 복잡하게 얽힌 내 손금을 한참 들여다보던 아주머니는 나보고 왜 이렇게 걱정이 많냐고 했다. 순간 뜨끔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 사주도 보고 손금도 보니깐 하는 소리겠거니 했다. 그리고는 직업을 바꾸고 싶어 하는데 장애물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직업은 몇 년간 나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무슨 일을 해도 이 일은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포기 상태로 그냥 이렇게 사는 건가 보다 하던 찰나였다. 한번 더 뜨끔했지만 호들갑 떠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참았다.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직장 고민이 있고 이직, 전직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지 않는가.
누군가와 두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눈 게 오랜만이어서 그런 건지, 아주머니의 손이 너무 부드러워서 그런 건지 의도하지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사실 저 작가가 되고 싶어요." 내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갑자기 왜 그 말이 나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주머니는 그럴 줄 알았다며,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해서 예체능 쪽을 잘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럴 줄 알았단 말은 누가 못 해.’ 나는 조용히 웃어 보였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시작만 하면 잘할 거라고 열심히 해보라고 하셨다. 솔직하신 분이다. 보통은 늦지 않았으니 도전하라고 하지 않나.
그 후로도 아주머니는 손금 해석을 줄줄 늘어놓고선 클라이언트의 만족도와는 관계없이 본인의 업무 수행 결과에 만족한 표정으로 더 궁금한 것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 말하며 비용을 지불하고, 홀린 것 같은 기분으로 부스를 나왔다. 농구가 하고 싶은 정대만도 아니고 작가라니 내가 한 말이지만 허무맹랑해서 어이가 없었다. 작가에도 종류가 얼마나 많은데 무슨 작가를 말하는 건지도, 대체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말에는 힘이 있다. 정제되지 않은 형태로 머릿속을 떠다니던 생각의 파편들이 모여서 '작가'라는 단어로 정의되는 그 짧은 순간, 내가 평생 몰래 간직해온 꿈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무언가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창작과는 전혀 관련 없는 걸 전공하고 전혀 관련 없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체한 것처럼 답답하고 괴로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걸까 싶었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 지는 몰랐지만.
작가가 되는 법은 아직 모르겠다. 정확히 무슨 작가가 되고 싶은 건지도. 정식으로 ‘작가’라는 타이틀은 어떻게 달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과연 죽기 전에 가능한 건지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작가라 한다면, 결과가 어떻든 계속 만들다 보면 언젠가는 되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장래희망이 작가라고 선언한 20대의 마지막 날로부터 5개월이 지난 지금 적어도 브런치 작가는 됐으니까 어느 정도 성공한 거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