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은도끼로 하는 하브루타

왜 거짓말을 하면 안되나요?

by 마들렌
금도끼 은도끼는 으레 민속전래동화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이솝이 그리스 로마 신화 세계관을 이용해 만든 이야기입니다. 산신령이 아닌 교활함을 주관하는 올림푸스의 신, 헤르메스가 정직한 나무꾼을 도와준다는 설정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수렵채취를 통해 자원을 얻는 점, 도끼라는 도구가 원심력의 원리를 이용했기에 다양한 문명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비율과 비중으로 제작되었다는 점, 유신론이 세계 각지에서 발현된 고대 사회의 일반적 통념이었다는 점 등에서 유럽에서 아시아로의 현지화가 아주 수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솝 우화가 세계 곳곳에서 소비되는 핵심 요인은 토끼와 거북이를 통해 나눈 절대선2, 투지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본질을 통찰하는 그의 정확하고 쉬운 언어 때문입니다. 정직과 거짓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모든 인류에게, 금도끼 은도끼는 정직한 사람은 상을 받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금도끼 은도끼가 시공을 초월해 아직도 전달되고 있음은, 사람들이 금도끼 은도끼의 메시지에 공감하며 거짓말이 아닌 정직이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가르침에 동의했다는 반증의 일부입니다. 금도끼 은도끼를 제외하고서라도 수많은 동화, 위인들의 전기가 정직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나 잠시 손을 얹고 생각해봅시다. 정말 교수님의 은혜에 감사하십니까? 사장님은 진짜 나이스한가요? 이 세상의 고객님은 진심으로 사랑 받는 존재입니까?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아내 또는 남편과 결혼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으셨나요? 이 모든 질문에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정직한 나무꾼에게 감정을 이입하지만 실상은 거짓말쟁이 나무꾼에 가깝습니다. 사람은 정직해야함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다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대화가 오갈지 상상해봅시다. ‘왜 거짓말하면 안되요?’ ‘거짓말하면 손해보니까.’ ‘그럼 엄마/아빠는 당연히 거짓말하지 않겠네요?’ ‘…’.





거짓말이라는 절대적 현상을 탐구하기 앞서 인간을 바라보는 인문학의 주된 관점을 전제하고자 합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욕구가 있습니다. 첫째는 안전입니다. 영국의 생물학자 리차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안전에 대한 욕구가 유전자에 각인된 진화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러시아의 문학가 레프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랑으로 살아가며, 안전은 사람에게 보살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과정이기에 추구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인간을 바라보는 상반된 두 시선 모두 사람이 안전을 추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성장입니다. 교육학에는 프랑크푸르트학파, 칸트학파부터 듀이로 대표되는 시카고학파 등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인간 성장의 원동력이 발전, 즉 이상(理想)을 향하고자 하는 욕구에 있음을 공통적으로 주장합니다. 지혜와 지식은 대표적인 이상향입니다. 미지(未知)를 해석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에 대한 추구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문명을 일으킨 힘의 원천입니다. 또 인내라는 이상향이 있습니다. 이 이상향에 대한 욕구가 사라진 사람은 어떠한 자기반성도 없이 사소한 자극으로도 서슴지 않고 벌컥 벌컥 화를 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양심의 가책 없이 거짓말을 하며, 분노와 조롱을 일삼으며, 조금이라도 약한 보이는 상대에게 폭력을 가하는 이유는 이상향을 포기한 채 동물성이 주는 즉각적 쾌감에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좋은 사람 그 자체를 꿈꾼다는 것은 과학자, 대통령, 연예인을 지향하는 것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저절로 지어지는 집이 없듯이, 이상향을 향한 인생의 여정이 아주 멀고 험합니다. 인생이라는 시간 속에 내던져진 사람은 머나먼 이상향을 향한 길에서 반드시 좌절을 마주치며, 좌절을 딛고 일어설 때 비로소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좌절을 온전히 딛고 일어서는 것은 어렵습니다. 날 때부터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 진리의 말씀에 따라 대부분 실패하지요. 어린 아이는 자신이 마주한 서툶이 이미 발달 단계를 마친 엄마와 아빠 또는 나이가 많은 형제나 자매에게서 보이지 않기에 굉장히 당혹해 합니다. 그때 아이가 신뢰하며 지지하는 대상이 모든 사람이 실수할 수 있으며 잘 못하는 것이 당연함을, 중요한 것은 성장임을 알려줄 때 사람은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배웁니다. 이것이 실패로 인한 부정적 감정을 담아주는 대상 또한, 내재된 발전 욕구만큼 인간 성장에 중요한 이유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왜 스스로 잘하지 못하느냐며 책망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기어 다니던 아이가 셀 수 없는 실패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마침내 걷게 되는 것은 몸을 뒤척이기 만해도 감탄해 마지않는 엄마아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작은 것에 대한 감탄은 좌절을 이길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지지 기반이며, 잘 못해도 괜찮고 도전이 그 자체로 존중 받는다는 느낌은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인간의 전 생애에 반드시 필요한 감정입니다. 그 안정감 속에서 사람은 실패와 실수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게 됩니다.




문제는 견우와 직녀, 절대선4 독립심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따라서 완벽한 부모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완전한 안정감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현실에서 비롯합니다. 이 세상에는 훌륭하고 똑똑한 인격체가 자신을 형편없는 존재로 꾸며내는 거짓보다, 형편없는 존재가 자신을 우수하게 꾸며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성장의 욕구와 동시에 성장을 포기하고 퇴행으로 도피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도전은 발전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과정입니다. 이 때, 실수하거나 실패할 때 신뢰한 대상으로부터 온전히 수용되지 못한 상황은 사람에게 아주 고통스럽게 기억됩니다. 자신의 존재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등, 부정당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경쟁에 뒤처졌기 때문에, 사랑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내면 깊은 곳에 수치와 모멸감이라는 흔적을 남깁니다. 그 때, 사람은 실수와 실패로 점철된 자신의 현실을 부정함으로 수치와 모멸감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도피합니다. 이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거짓말입니다. 자기 자신이 멋진 존재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실패와 좌절 속에서 자존감을 세워줄 신뢰할만한 대상이 존재하지 않다고 느끼는 아이에게, 현실 왜곡을 통해 손쉽게 초라한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거짓말의 유혹은 너무나 뿌리치기 힘든 종류일 것입니다. 이처럼 거짓말이라는 진실의 왜곡 이면에는 진실이 가져올 상처와 좌절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욕구가 숨어있습니다. 만약 엄마아빠 또는 선생님이 자신의 실패를 온전히 수용해줄 거란 신뢰관계가 없다면, 아이들이 상상 속에서 거짓말이라는 또 다른 엄마아빠를 스스로 생성해 낼 것입니다.


거짓말쟁이 나무꾼은 금도끼를 소유하는데 실패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냉혹하게도 금도끼를 갖지 못했어도, 은도끼가 없어도 너는 네 존재 자체로 소중해라는 말을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금도끼 은도끼가 없는 자기 자신을 수용해준 대상이 없었기에, 그에게는 정정당당히 현실을 마주하는, 즉 정직할 수 있는 용기를 길러내지 못합니다. 여기서 동화를 조금 더 깊이 파헤쳐 볼 때, 거짓말쟁이 나무꾼이 왜 정직한 나무꾼의 전례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는가하는 하나의 의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정말 금도끼가 갖고 싶었다면, 쇠도끼를 빠뜨린 후 금도끼를 들고 나타난 산신령에게 정직한 나무꾼처럼 솔직하게 금도끼는 제 것이 아닙니다라고 밝히면 될텐데, 거짓말쟁이 나무꾼은 그 순간 자신이 금도끼를 갖는데 실패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고 맙니다. 이는 정직이, 안정성을 바탕으로 훈련된 사람에게 드러나는 순간적인 선택이라는 이솝의 사고를 투영합니다. 턱걸이를 한 개도 못하던 사람이 마음을 먹는다고 갑자기 열 개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실수와 실패가 수용된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연습을 하지 못한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을 때, 거짓으로 도피해버리고 맙니다. 정직하면 상 받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앎이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현실을 향해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정직이라는 힘을 길러낸 사람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이솝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거짓말쟁이 나무꾼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재물일 수도 있고, 매력적인 이성일 수도 있으며, 권력일 수도 있는 금도끼 은도끼, 즉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필사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의 성취가 좌절될 때, 실패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성취를 이룬 사람이라며, 다른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을 속입니다.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허풍부터 시작해서 더 공격적으로 변모해, 자신의 경쟁 상대가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다는 거짓말, 정적이 체제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거짓말, 천한 신분이 열등함을 증명한다는 거짓말 그리고 나 자신은 완전히 자격을 갖춘 인물이라는, 누구나 갈망하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현실을 꾸며내는 거짓말을 꾸며냈지만 그들의 결말은, 소중한 쇠도끼마저 파괴된 비참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며 이솝은 금도끼를 갖게 되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정직한 나무꾼처럼 금도끼 은도끼를 갖지 못한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직한 나무꾼은 욕망을 이루지 못한 자신의 현실이 부끄러워 숨기거나 왜곡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다른 사람에게 알립니다. 욕망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더 나은 현실을 꿈꿉니다. 정직한 나무꾼도 금도끼가 갖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만큼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사람만이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금도끼의 주인이 될 자격은 욕망을 이루기 위해 온갖 수단을 불사하는 불도저 같은 사람이 아닌, 금도끼 그 자체보다 훨씬 값진 정직의 가치를 알고 정직이라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금도끼 은도끼는 오히려 그 자체를 욕망하는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없는 역설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나무꾼은 금도끼 은도끼가 주는 매력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그는 현실과 거짓을 구분하며,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 위에서 금도끼 은도끼를 소유합니다. 자신의 원래 소유였던 쇠도끼를 멸시하지 않고 가져가는 정직한 나무꾼의 모습은, 어느 날 문득 날아온 금도끼 은도끼가 홀연히 떠나간다 해도 그 실패가 그의 당당한 인간성에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임을 기대하게 합니다. 정직을 행할 자유가 있는 인간성 그 자체가 바로 용감하게 현실과 맞서 싸워온 정직한 나무꾼이 받은 진짜 상이었습니다.





금도끼 은도끼는 현실도피라는 모든 인간 생애에서 피할 수 없는 유혹의 표상인 거짓말을 소재로 했기에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이야기입니다. 사실 우리가 즐기는 소설이나 영화도 거짓말의 일부입니다. 현실과 완전히 구분한 채 놀이의 일부로 즐길 수 있다면 거짓말은 상상을 즐기는 유쾌함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보다 더 안락하게 느껴지는 도피처가 된다면 안개 같은 욕망을 움켜쥐려 애처로이 손짓하는 불쌍한 인생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아이들과 동화를 나누며, 정직한 나무꾼이 진짜 상급은 산신령이 준 금도끼가 아니라 스스로 일궈낸 정직에 있음을 나눈다면 이솝이라는 지혜자가 직접 경험하며 습득한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특히, 금도끼 은도끼를 통해 거짓말을 하는 아이를 더 품어줄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 거짓말쟁이 나무꾼은 너무 오랜 시간 거짓말로 도피했지만, 정신이 막 발달하기 시작한 어린이는 변화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놀랍게도 부모자녀관계에서조차 신뢰관계는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아직 엄마아빠나 선생님과 충분한 신뢰관계가 쌓이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이 있는 그대로 수용되지 못할 것을 두려워 거짓말이라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일 테니, 실수와 실패로 아이의 존재를 함부로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선행하신다면, 스스로가 만들어낸 허상이 아닌 진짜 엄마아빠 품에 안겨서 현실을 바르게 직시하며 성장하는 아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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