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간절히 기다렸겠지.
팔이 가렵다. 미칠 듯이 가렵다. 밤새 팔을 벅벅 긁다가 아침에 눈을 뜨니 오른팔에 볼록하게 부은 자국이 보인다. 모기가 물은 모양이다. 겨우내 모기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는데 날씨가 따뜻해지니 슬슬 움직이나 보다. 우리가 추운 겨울 동안 봄이 오길 기다렸듯 모기들도 기다렸겠지. 어쩌면 우리가 봄을 기다린 것보다 훨씬 더 간절하게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알에서 깨어나 파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는 시간이니까. 추운 인고의 시간을 버틴 뒤 찾아온 봄은 그들에겐 꿈같은 시간이다.
같이 봄을 기다렸다
같이 봄을 기다렸다는 목표 의식 아래, 일종의 동료애마저 느껴지는 모기. 같이 꽃이 만개한 들판에서 손 잡고 놀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봄을 좋아하니, 제대로 즐길 수 있겠지. 벌겋게 부어오른 팔을 봐도 그다지 화가 나진 않는다. 봄을 간절힌 기다린 모기를 위한 일종의 선물이라 생각하지 뭐. 따뜻한 날씨에 신이 나서 목을 축이러 나왔는데, 내 피 한 방울 정도는 기부할 수 있지 않은가. 모기의 기분을 살려줄 겸 해서.
피 한 방울 정돈 기부할 수 있지
그렇게 팔에 열 십자로 손톱자국을 낸 뒤, 씻으려고 침대를 나왔을 때, 벽에 검은 물체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배가 불룩하게 찬 모기 한 마리가 붙어있었다. 내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챘는지, 달아나려고 했으나 배가 너무 무거웠던 나머지, 1 미터를 채 못 날고 바닥에 떨어졌다. 아까 전에 느꼈던 동료애는 어디 가고 내겐 그저 모기를 잡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기는 굳이 뱃속 내용물을 확인시켜주며 휴지 아래서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네가 기다려왔던 봄은 내가 대신 만끽해줄게"
휴지 안에 파묻힌 모기에게 나지막이 속삭인 뒤, 쓰레기통에 휴지를 던져놓고 방을 나섰다. 이제 한 번 피를 기부했으니까 두 번 다시 기부하지 않으리라는 다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