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 어떤 죽음에 '존엄'이 있는가

by 느쾀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니,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긴 한 것일까. 죽음은 인간 역사 동안 인간들이 전혀 알 수 없던 유일한 미지의 세계이다. 그 누구도 죽음 이후를 알 순 없다. 죽음 그 이후를 알 순 없더라도, 우린 모두 죽게 된다. 만약에 죽음이 우리에게 닥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를 쓴 모니카 렌츠는 스위스 장크트갈렌 종합병원에서 17년간 1000여 명의 임종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쓴 책이 바로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이다.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일까

모니카 렌츠는 주로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 인가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과연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일까. 고통 없는 죽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맞이하는 죽음? 아니면, 하고 싶은걸 다 하고 맞이하는 죽음? 모니카 렌츠는 좋은 죽음이란, 성공한 삶과의 이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성공한 삶과의 이별이란, 자신의 죽음에 대해 본인이 동의할 수 있을 때 성공한 삶과의 이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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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 앞에서 절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임종 준비 또한 필요하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겐 온갖 불안과 걱정, 그리고 두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 주위에서 그 사람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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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렌츠는 좋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존엄'이라는 개념 또한 설명한다. 존엄은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편안하게 수용하는 것. 이게 바로 존엄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내 것이었듯이, 죽음 또한 내 것이라고 수용하는 것. 이를 통해 존엄이 완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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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아옴에 따라 갖고 있던 삶에 대한 집착,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거부 반응이 전부 사라지고, 온전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지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죽음은 누구에게도 두려운 하나의 '관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그 누구도 그 관문을 피할 순 없다. 결국 삶의 끝에선 넘어야 하는 관문인데, 이를 마냥 두려워하고, 걱정할 순 없을 것이다. 그 죽음을 어떻게 편안하게 맞이할 것인지를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는 잔잔하게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환자의 동의 없는 '존엄사'는 존엄하지 않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좋은 죽음'에 대해 참 많이 생각해봤던 것 같다. 과연 좋은 죽음이 존재할 것인가.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맞는 죽음은 정말 '좋은 죽음'인 것인가.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이 말은 쉽지만 실제로 실천하긴 참 어려운 게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하지만, 그 어려운 '죽음에 대한 동의'를 못해서 죽음 앞에서 그렇게 힘들어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도 죽음에 대한 동의가 있어야 '존엄' 또한 존재한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존엄사' 역시 환자의 동의가 있어야 진짜 '존엄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환자 동의 없이 행해지는 '존엄사'는 환자로 하여금 좋은 죽음으로 이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일종의 '살인'이라고 생각이 된다.


생소하지만 모두가 궁금해하는 죽음을 누구보다 더 가까이서 지켜본 모니카 렌츠의 책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 죽음을 맞이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과, 그들의 마지막 말들을 수록해 놓아서 더욱 흥미로웠다. 평소에 제대로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해준 모니카 렌츠에게 더욱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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