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뭐든지 비벼먹곤 한다
보통 학식을 먹거나, 고속도로에서 휴게소에 들를 때 자주 먹는 음식을 하나쯤은 각자 갖고 있을 것이다.
배는 고픈데 딱히 먹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고. 하지만 먹으면 맛있게 먹을 것 같은 음식.
난 '어떤' 음식이다,라고 구체적으로 말은 못 한다.
왜냐하면 난 그냥 비벼먹는 것이면 맛있게 먹기 때문이다.
난 비벼먹는 음식이 좋다
학식을 먹을 때도, 김밥 천국 같은 분식점에 갈 때도 시키는 음식은 대부분 비벼 먹는 음식들이다.
제육덮밥, 불고기 덮밥, 돈가스 덮밥 등등.
내가 언제부터 이런 비벼 먹는 음식을 좋아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젓가락 없이 숟가락만으로도 간단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그런 음식들을 좋아한다.
반찬이 따로 나오더라도, 그냥 밥에 넣어서 숟가락으로 '야무지게' 비벼서 먹을 정도로 비벼먹는 음식은 대부분 내 입맛에 맞는 편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비빔밥은 싫어한다.
아무래도 이런 음식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내 귀차니즘 때문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습관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생겼던 것 같다.
공부를 할 때, 밥 먹는 시간조차 아끼겠다고 닥치는 대로 반찬을 넣어서 그냥 한꺼번에 먹고 독서실로 향했다. 그렇게 반찬을 다 넣고 섞어 먹었는데, 맛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맛있었기 때문에 그 습관이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반찬을 넣어 섞는 다기보단, 아예 처음부터 덮밥을 먹는 습관으로 살짝 변형되었지만.
요즘 들어 드는 사소한 걱정.
비벼먹는데 익숙해지다 보면, 반찬 하나하나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 채 그냥 소화시켜버린 게 아닐까.
다 섞어먹으면 이 것도, 저 것도 아닌 맛이 나기 마련이다.
반찬 하나하나의 풍미를 못 느끼고 그냥 한 끼를 해결한다면, 이건 한 끼의 즐거움을 놓치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엔 평소 같으면 비벼먹었을 음식도 일부러 따로따로 먹기도 한다.
비벼먹었을 때의 맛을 많이 느껴봤으니까, 반찬 하나하나의 맛도 느껴보기 위해서.
비벼 먹다 보면, 하나하나의 가치를 모른다
이건 비단 음식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평소에 생활을 할 때에도, 이런 비벼먹는 습관은 몸에 배어있다.
일을 처리할 때, 그냥 한꺼번에 처리하는 습관.
빨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 하나하나의 가치나 즐거움을 전혀 못 느낀다.
어떻게 보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경험인데.
앞으론 뭐든지 '비벼먹는' 습관을 고쳐나갈 생각이다.
대신, 반찬 하나하나의 매력을 느끼면서 한 끼의 즐거움을 그대로 누릴 것이다.
일상의 즐거움 역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