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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May 07. 2017

나는 수집한다, 고로 존재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어느 수집광의 집요한 자기 관찰기


이번에 나온, 아니, 12일에 나올 책세상 신간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를 책세상의 독서단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그 누구보다 먼저 읽을 수 있었다(책이 출판되기도 전에 읽게 되다니!). 영광스러워라. 이 책은 이미 2008년에 미국에서 출판되었던 책이고, 미국 아마존 2008년 100대 도서에 선정된 바 있는 '검증' 된 자전적 에세이이다.  


물건 수집을 통해 자기 자신을 치유한다 

윌리엄 데이비스 킹이 지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는 우리가 주변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일명 '수집 덕후'에 대한 책이다. 물론 그 수집광은 윌리엄 데이비스 킹, 본인이다. 윌리엄 데이비스 킹은 어린 시절부터 수십 년간 쓸모없는 물건을 모아 온 수집광이다. 그는 사춘기 때 가족들로부터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고, 이런 애정 결핍을 물건 수집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라는 얻기 힘든 것 대신, 쉽게 얻을 수 있는 잡동사니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그렇다면 저자뿐만 아니라, 다른 수집광들 역시 단순히 수집이 좋아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나 상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생각을 윌리엄은 바로 읽었는지, 수집이라는 행위가 어떤 식으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늘어나는 물건들 사이에서, 자신에게 있는 결핍을 채워나가는 일종의 심리적 '치유' 행위를 그는 수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금 사회는 경쟁 사회이다. 경쟁을 하다 보면, 남이 쟁취한 물건이 있으면, 난 쟁취하지 못한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를 심하게 부러워하거나, 나 자신을 자책한다면 나 자신의 가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집하는 행위는 이런 상대적 박탈감에 대처하는 일종의 방어 기제라고 할 수 있다. 


수집을 통해 윌리엄 데이비드 킹은 자신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고, 결국은 그는 본인이 수집한 1,579개에 달하는 시리얼 상자를 이용한 예술적 퍼포먼스를 통해 세상과 소통까지 할 수 있었다. 그를 괴짜 수집광이라고 여긴 그의 딸 역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고, 그의 물건들을 물려받기까지 한다. 수집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주며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사회적 유대감을 확대시킬 수 있는 바람직한 행위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윌리엄 데이비스 킹과 그의 수집품들

 

이 책을 다 읽고 궁금해서 저자에 대해 찾아봤다. 정말 어마어마한 수집광이었다. 식료품 라벨들부터 우표까지 엄청난 잡동사니들의 향연이었다. 그의 식료품 라벨들을 살펴보다가 내가 아는 식료품 라벨들이 보이면, 그와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은 그런 친밀감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수집이란 행위는, 사람들 간의 공감대를 형성시킬 수 있는 그런 행위가 아닐까. 


내 만년필 수집은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시작됐다

사실 우리 누구나 물건을 수집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빵 사 먹으면 나오는 포켓몬 스티커를 모아본 사람부터, 우표, 만년필까지 다양한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살면서 종종 본 적이 있다. 사실 나 또한 물건을 수집해본 경험이 있다. 만년필을 수집을 했었는데, 돈이 없어서 많이는 수집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꽤 다양한 만년필을 구매했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를 읽고 난 왜 만년필 수집을 시작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유년시절 상처나, 트라우마로부터 시작한 건 딱히 아닌 거 같은데 하고 말이다. 계속 생각해봤더니, 고등학교 때, 부자 친구가 멋지게 만년필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었던 것 같다. 수업시간에 사소한 필기조차 만년필로 하는 모습은, 싸구려 볼펜으로 필기를 하던 나에게 일종의 '결핍'을 느끼게 했던 모양이다. 그런 결핍을 난 만년필을 수집하는 행위로 채우고자 했었다. 


미니멀리즘,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는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즘'에는 정 반대되는 사상을 갖고 있는 책이다. 미니멀리즘은, 줄곧 '심플하게 살아라', '쓸데없는 것들은 버려라'라고 주장한다. 미니멀리스트들이 윌리엄 데이비스 킹을 본다면 기겁을 할지도 모르겠다. 쓸데없는 것들을 버리랬더니 평생을 수집하는데 썼으니까. 하지만 우리도 알다시피, 심플하게 사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물건을 버리라고는 하지만, 버리려고 쓰레기통 앞에 서면, 있으면 추억이 될 것 같고, 버리기 아까워지는 게 우리의 당연한 심리이다. 그런 우리의 심리를 옹호해주는 책,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는 물건을 버리지 않고, 수집하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그런 에세이이기도 하다. 물건을 수집한다는 것의 유용함, 그리고 소중함을 일깨워주면서 미니멀리즘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쓰레기통 앞에서 망설이는 우리를 위로한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길. 쓰레기까지 수집하는 것은 아니니까. 쓰레기는 버리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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