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잘 나가는 거라면 뭐든지 따라 하는 '따라쟁이'다.
오랜만에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안 쓰는 동안 머릿속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난 왜 글을 쓰게 됐고, 앞으로 어떻게 써야 할까.
사실 난 남들 하는 걸 보면 뭐든 따라 하고 싶은, 줏대 없는 사람의 표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남들 잘하는 건 뭐든 따라 하고 싶다
중학교 때 친구가 삼성의 새로운 YEPP MP3를 사 왔을 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쓰던 mp3와의 의리는 뒤로한 채 친구의 mp3와 똑같은 기종을 냉큼 사 오기도 했다. 그런 날 보고 친구들은 '따라쟁이', '남들 하는 것만 따라 하는 친구' 라며 나름 쓴소리를 해댔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난 그런 내가 싫지 않았다. 소위 '잘 나가는' 모든 것을 따라 하면 언젠간 나도 잘 나가게 되겠지라고 막연하게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땐 친구 하나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수능 끝나고 춤을 꼭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능 끝나자마자 춤 학원의 팝핀 반에 등록해서 춤을 배웠다. 요즘도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춤추는 것'이라고 대답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엥, 네가 춤을 춘다고'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난 뻣뻣함의 표본이고, 덩치도 커서 둔 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런 내가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배우게 된 데에는 '따라쟁이' 본능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따라쟁이는 결국 대학교 춤 동아리에 들어가서 꽤 큰 무대에 몇 번 서보기 까지 하는 기적을 맛보게 됐다.
'따봉충'이 되려고 시작한 글쓰기
그렇게 이것저것 따라 하기 좋아하는 나는 페이스북에서 친구들이 쓰는 나름 진지한 장문의 글들을 많이 발견하게 됐다. 내용은 별거 없지만 태도만큼은 '진지'한 글들이 몇십 개의 '좋아요'를 받는 모습을 보고, 아, 진정한 멋쟁이는 글도 잘 써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망상이 생겼다. 좋아요 10개는커녕 5개도 감지덕지인 내 초라한 페이스북 게시글을 보며 다짐했다. 나도 글을 멋들어지게 써서 좋아요를 많이 받겠다고. 그렇다. 난 소위 말하는 '따봉충'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자기계발도 아니고, 입시 준비도 아니고, 취업 준비도 아니었다. 그냥 남들에게 관심 좀 받아보겠다고 남들 따라 시작한 것이었다. 따라쟁이 습성의 연장선이었겠지 아마.
그렇게 글을 1달 정도 썼다. 관심을 많이 받으려면 글을 자주 써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은 있었다. 내 초기의 글들을 보면 거의 '아무 말대 잔치'라고 해도 무방하다. 어쩔 땐 냉철한 지식인인 듯, 어쩔 땐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인 듯 난 내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글들은 신문에 실리기도 하고, 카카오톡 채널에 올라가기도 했다. 관심을 넘치도록 받았다. 하루에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읽고,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유를 하기도 했다.
이런 넘치는 관심을 받기 시작하니까, 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저 좋아요 몇십 개 정도 받으려고 쓰기 시작한 글들이 하루에 몇천 명, 몇 만 명이 읽는 글이 되었는데 과연 그에 걸맞은 글들을 쓰고 있을까. 혹시 그 몇 천명, 몇 만 명의 사람들은 내 글을 보고 비웃고 있는 게 아닐까. 그저 잘 나가는 걸 따라 하고 싶었던 '따라쟁이'에겐 과분한 관심이었다.
그래서 한 주동안 생각해봤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와, 변해야 할 점.
페이스북에서 벗어나 훌륭한 작가들을 따라 해야 한다
내 따라쟁이 습성은 아마 평생 못 버릴듯하다. 따라쟁이에서 벗어나서 문화를 선구 하는 나폴레옹이 되겠다는 실현이 불가능한 다짐은 애당초 하고 싶지가 않다. 그러니 난 계속 따라 해야 한다. 다만 이제부턴 페이스북에 친구들이 끄적이는 진지 글들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작가들의 글을 따라 하려고 한다. 그렇게 따라 하다 보면 내 글들을 이 그저 사람들의 관심 정도만 끄는 글이 아니라, 전문성 있는 글로 거듭나지 않을까.
그래서 앞으론 좋은 글들을 많이 읽을 생각이다. 브런치에 있는 훌륭한 작가님들의 글들을 따라 할 생각이다. 어디선가 내 글을 따라 하고 있을 또 다른 '따라쟁이'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