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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Sep 12. 2018

치매 환자이기 이전에 인간이니까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매력

혹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나.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니, 무슨 기본도 안 된 식당이 다 있냐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일본에 존재한다. 꾸준히 영업을 하는 식당은 아니지만, 캠페인처럼 특정 기간을 정해놓고 특정한 장소에서 운영된다. 그럼 이 요리점은 왜 주문을 틀리는 걸까. 그 이유는 다소 간단하다. 이 요리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치매 환자들이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일하는 직원들. 모두 치매 환자들이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오구니 시로라는 방송 PD가 기획하고 실행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기획 배경과 일하는 치매 환자들의 스토리를 직접 담은 책이다. 2012년 저자는 방송 PD로 일할 때 우연히 와다 유키오라는 치매환자 간병인을 취재하게 됐다. 와다 씨는 '치매에 걸려도 마지막까지 나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잃지 않는다'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와다 씨의 간병 시설의 문은 절대로 잠겨있지 않았다. 치매 환자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요리도 직접 해 먹었다. 시설 안에서 치매 환자들은 실수를 해도 용납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치매 환자는 위험하고 지속적인 케어가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오구니 시로는 번개를 맞은듯한 깨달음을 얻는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앞에 있는 판넬. 혓바닥을 내미는 모습이 '아차, 실수했네요! 헷' 하는 것 같다.

와다 유키오의 신조에 감명받은 저자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식당을 기획한다. 치매 환자들이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자신이 예전에 그랬듯, 저자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치매 환자들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해결하고 싶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치밀하게 기획한 후, 오구니 시로는 좋은 동료들과 함께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시작했다. 요리점에서 일할 치매 환자들을 신청을 통해서 받았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치매 환자들이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 지원하게 된 다양한 배경도 담겨있다. 이들의 안타깝지만 또 멋진 사연들을 읽으면 어느새 마음이 따뜻해져 있을 것이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치매환자들은 당당하다

치매에 걸리면 주변 사람들도 힘들지만, 가장 힘든 건 당사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이게 되고, 스스로를 자책한다. 답답함에 화를 내기도 하고, 무기력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스스로를 잃어가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치매 환자들이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환자들의 다시 한번 밝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당당하게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시켜준다. 저자는 말한다. 치매 환자에게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주변 사람들이 찾아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일상도 그리고 그 사람을 지지하는 가족들의 일상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라고.

이 설명을 읽으면 늘 서두르던 당신의 심장도 천천히 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변화를 얻는 건 치매 환자뿐이 아니다. 그 식당을 찾은 손님들도 다소 엉뚱하지만 따뜻한 분위기에 웃음 짓는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일하는 치매 환자들의 모습에 놀란다. 손님은 주문이 틀리면, '뭐 어때' 하며 넘겨버리고, 주문이 틀리지 않으면 '대단해요' 하며 엄치를 치켜세운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실수를 용납해주는 안전하고 행복한 곳이다. 실수할 수도 있지.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 식당을 나서는 사람들의 마음은 전보다 한결 넉넉해진다. 


치매 환자를 대할 때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이해하려는 관용과 배려만 있다면 우리 사회는 소중한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다(27쪽).


대한민국에서 치매 환자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나쁘다. 많은 사람들이 치매 환자는 '언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요양원에서 치매 환자를 보면 괜히 피했고, 알게 모르게 무서웠다. 하지만 이는 치매 환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태도였다. 치매 환자는 반대로 사람들이 자신을 다르게 대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괴로워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이다. 치매 환자라고 꽁꽁 묶어두고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다시 일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다시 일자리를 주고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치매 환자에 대한 인식 개선을 함과 동시에 치매 환자의 행복을 되찾아 주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치매 환자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우리나라도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처럼 치매 환자와 사람들이 함께 접촉하며 소통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치매 환자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가 모두에게 필요하다. 치매 환자이기 이전에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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