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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Jan 07. 2019

<올드보이>

독이 든 복수라는 이름의 달콤한 사과

역시 박찬욱이다. 이름대로 이젠 '올드' 해진 <올드보이>는 지금 보면 다소 어설픈 액션씬, 카메라 효과들로 가득하지만 명작이다. 국내에서 복수는 영화의 단골 소재다(아저씨, 해바라기 등등). 그 많은 복수 영화들 중에서도 <올드보이>가 차별화되는 이유는 <올드보이>가 초점을 맞추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올드보이>는 복수의 과정보다도 복수의 이유와 복수를 하고 난 이후에 더 초점을 맞추어서 플롯이 진행된다. 복수를 하기 전까지는 삶의 목표가 그 어떤 순간보다도 뚜렷하지만, 복수를 한 다음에는 그 어떤 순간보다도 삶의 의미가 불투명해진다.

군만두 먹고싶네

오대수(최민식)는 영문도 모른 채 15년 동안 감금된 채로 군만두만 먹는다. 왜 자신을 가두는지도, 언제까지 갇혀있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오대수는 방 안에서 복수만을 위해 꿈꾼다. 밖에 나가서 자신을 왜 가두었는지 알아내고 죽일 마음으로 15년 간 상상 훈련을 한다. 과연 오대수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15년간 갇혀있던 걸까. 

오대수는 결국 이유진(유지태)이 자신을 15년간 가뒀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복수하려고 하지만 맘대로 죽일 수도 없다. 죽여버리면 이유진이 왜 자신을 가두었는지 알 수도 없으니까. 점점 퍼즐 조각을 맞추며 진실에 더 가까워지면서 오대수는 이유진이 자신을 일부러 풀어줬다는 것을 알아낸다. 15년 동안 오대수를 가뒀던 것은 사실 목적이 아니라, 복수를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오대수의 딸이 클 시간을 충분히 번 다음, 이유진은 복수에 성공한다. 오대수는 복수에 성공했는가? 아니. 오대수는 복수를 하지 못한다. 복수에 성공한 이유진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오대수와 마찬가지로 복수를 삶의 전부로 생각했던 이유진은 더 이상 살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복수도 실패한 오대수는 결국 기억을 지워버린다. 

이유진이 오대수를 처음 만날 때 보여준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심장을 멈출 수 있다는 리모컨. 사실 그 리모컨은 이유진의 심장을 멈추는 리모컨이 아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오대수가 그 버튼을 누르는 순간 복수는 완성된다. 복수가 완성되는 순간 이유진은 삶의 이유를 상실한다. 실제로 심장이 멈추는 것은 아니지만, 복수가 성공하는 순간이 이유진이 죽는 순간인 것이다. 옛날 영화지만 이런 장치를 설치해놓았다는 것이 <올드보이>를 명작으로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올드보이>는 복수의 위험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복수는 누군가가 15년 동안 갇혀서 군만두만 먹게끔 도울 수도 있지만 반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게 만들 수도 있다. 복수가 끝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복수가 또 하나의 시작이 되어버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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