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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Sep 16. 2019

세상에서 제일 세련된 성교육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사실 난 시리즈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궁금하면 못 참는 내 성격 탓에 계속 보게 되고, 결국 잠도 못 잔다. 그래서 영화를 더 좋아한다. 그런데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물을 찾아보게 된 건 남미 여행을 계획하고 나서였을 것이다. 28시간에 가까운 비행시간에다가 10시간 가까이 되는 총 경유 대기시간.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건 오프라인으로 다운로드해놓은 넷플릭스 시리즈나 주야장천 보는 거겠지. 그리고 남들 다 보는 것 한 번쯤은 봐보고 싶기도 했다. 남미 여행을 떠나기 전에(지금은 이미 갔다 온 지 2주나 지났다) 볼만한 시리즈 뭐 없을까 하고 딱 봐도 따분해 보이는 넷플릭스 추천작 들을 뒤적거리다가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성기 모형에 콘돔을 씌우고 있는 남자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는 여자. 성교육 장면인 듯했다. 클릭을 안 할 수가 없지 않은가. 

오티스와 그의 짝사랑 상대 메이브

1화부터 장난 아니었다. 너무 야했다! 음.. 야하다는 말은 좀 유치하니까 좀 어른스럽게 말하자면 노골적인 성관계 장면이 담겨있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심지어 성기 노출도 있다. 첫 장면을 아무래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극대화하기 위함이겠지. 그리고 이 방법은 피타고라스의 정리처럼 드라마 세계에서는 하나의 공식처럼 통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1화를 봤을 땐 그냥 좀 자극적인 고등학교 하이틴 드라마 정도 될 거라 생각했다. 하이스쿨 뮤지컬의 더티 버전을 떠올렸고 내심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하다.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는 혁신이었다. '혁신적'이라고 하면 내 감동을 온전히 표현하기 힘드니 그냥 혁신 그 자체라고 표현하고 싶다. 혁신이라는 말은 아이폰 뒤에나 어울릴 줄 알았지만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뒤에도 충분히 붙을 수 있는 그런 단어였다. 일단 주인공이 오티스라는 사실은 5살 꼬마 아이도 알 수 있을 것이다(제목에 쓰여있다). 오티스에겐 특별한 어머니가 계시는데, 그녀가 특별한 이유는 직업이 성상담가 및 성 연구가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집에는 온갖 성적인 그림과 책, 기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오티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성적인 상식이나 지식에 해박해질 수밖에 없었고, 같은 고등학교 여사친 메이스는 이런 오티스의 능력으로 돈을 벌고 싶어 한다. 오티스는 메이스를 짝사랑했기에 메이스의 사업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고 그녀와 함께 성적인 문제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그들의 고등학교에서 성 상담소 비즈니스를 함께 운영한다. 꽤나 참신하지 않은가. 고등학교에서 성상담 비즈니스라니. 


이 시리즈는 '혁신' 그 자체다

왼쪽이 오티스, 오른쪽이 상담하러 온 동급생

물론 다 좋은 건 아니다. 사실 좀 아쉬운 게 있다면 바로 한글 제목이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라는 점이다. 원래 제목은 <Sex Education>인데 이는 성교육이라는 뜻이다. 닭가슴살만큼 담백한 이 원본 제목이 사실 시리즈의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그냥 시리즈 자체가 성교육이다! 그것도 아주 세련되고 힙한 성교육.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의 각 에피소드에는 정말 특별한 사연들이 등장한다. 당연히 성 상담소 운영하는 이야기니까 사연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사연들은 대다수가 LGBT 관련 내용이다. 레즈비언끼리의 성관계 관련 고민 상담, 낙태에 관련된 고민, 발기부전까지. 꼭 성 상담 관련이 아니더라도 등장하는 인물들의 가정환경도 참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레즈비언 커플을 두 어머니로 둔 인물이 가장 인상 깊었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를 혁신적으로 만든다. 시청자는 평소에 관심도 없거나 심지어 거부감을 느꼈을 법한 그런 LGBT 사연들에 몰입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성교육 시간에 늘 듣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세요'를 정말 천재적인 방법으로 유쾌하게 풀어낸 것이다.  


이 시리즈는 사실 장편 시리즈는 아니다. 8화까지 있으니까. 하지만 덕분에 밤새서 다보기 딱 좋았다. 시리즈를 보면서 LGBT의 심리와 감정에 몰입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그들과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물론 25년 넘게 이성애자로(아직까지는) 살아온 내가 그들의 상황과 심리를 시리즈만 보고 온전히 이해했다고 하는 건 큰 오만일 것이다. 하지만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는 그들과 심리적 거리를 유쾌하고 즐거운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사람들에겐 꼭 봐야 할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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