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지옥도 당연해진다는 것 <플로리다 프로젝트>
현실이 무서운 이유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적응하게 되기 때문 아닐까.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달콤한, 때로는 뼈저린 현실에도 우린 적응을 한다. 그리고 결국은 그 현실은 아무렇지 않은, 그저 일상이 되어버린다. 물이 뜨거워지는 걸 모른 채 익어가는 바보 같은 개구리의 이야기는 우리 근처에서 늘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하나의 정형화된 플롯을 가진 영화가 아니다. 일종의 관찰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플로리다 모텔촌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그곳에 살고 있는 6살 아이들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꼭 한 명의 주인공을 꼽으라 할 순 없지만 굳이 꼽으라면 제대로 된 직업이 없어 일주일에 35달러 되는 방세도 내지 못해 결국 매춘을 하는 엄마를 둔 딸, 무니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플로리다 모텔촌에서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무니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주요 소재이다. 그리고 순진한 그들 주변 어른들의 지옥 같은 현실은 그들의 순수함을 더 도드라지게 한다.
근처에 놀거리도 없는 플로리다의 모텔촌에서 무니와 친구들은 주민들의 차에 침을 뱉기도 하고 성희롱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버려진 콘도에 들어가서 불장난을 하다가 건물 한 채를 홀랑 다 태워먹기도 한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와 애들 정신 나갔네. 너무 짜증 난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처음엔 나도 영화를 보면서 과거 어린이 봉사활동을 하던 시절 느꼈던 분노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 아이들의 극단적인 현실을 보니 그럴 만도 했다(성희롱과 방화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제대로 된 놀거리도 존재하지 않고 주변엔 욕만 해대는 어른들이 들끓다 보니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를 습득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만한 게 그거뿐이니 어떡하겠는가. 오히려 아이들이 불쌍하다.
극 중에 무니가 쓰러진 나무 위에서 한 말이 있다. '나는 이 나무가 제일 좋아. 쓰러져도 계속 자라거든'. 보통 우리가 쓰러진 나무가 계속 자란다는 말을 들으면 쓰러져도 다시 하늘을 향해 자라기 위해 애쓰는 나무를 떠올리게 된다. 근데 사실 그 나무는 쓰러진 채로 땅과 수평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하늘과 단 1cm도 가까워지지 못하며. 어쩌면 그 나무는 거지 같은 모텔촌에서 계속 자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쓰라린 현실을 투영하는 상징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이 사는 모텔촌 이름도 '퓨쳐 랜드', '매직캐슬'이다. 미래도 없고, 마법도 없는 그곳에서 아이들은 그 지옥이 당연해진다.
지옥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 지옥이 당연하다.
놀라운 점은 그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도 모성애만큼은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아이를 지키려고 한다. 그 지키는 방식이 윤리적이든 아니든, 그 목적만큼은 순수하다. 결국 무니의 엄마는 끔찍한 방식으로 자신의 아이를 지키려다가 결국 아동국에게 아이를 뺏기는 지경까지 이르긴 했지만 당장 낼 방세도 없는, 그런 벼랑 끝에 몰린 그녀의 환경이 극단적인 선택을 부추긴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엄마와, 단짝 친구 젠시와 헤어지기 싫어 도망친 무니가 찾아간 곳은 젠시의 집. 젠시는 문 앞에서 자신과 영영 이별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서럽게 우는 무니의 손을 잡고 도망친다. 뛰고 뛰어서 그들은 디즈니 랜드의 매직킹덤 안으로 뛰어들어가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뭐 당연하겠지만 아이들의 상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상은 아이들이 모텔촌에서 벗어나 뭔가 바라보며 꿈으로 삼을만한 이상향이고, 희미한 변화의 가능성이다. 언젠가는 그 둘이 어른이 되어 자수성가한 후 '합법적'으로 디즈니랜드에 놀러 갔을 것이라고 감히 희망을 품어본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아이들의 연기가 소름 끼치도록 좋다. 정말 그 모텔촌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 같다. 아이들이 아이답게 연기하는 게 제일 어려울 것 같은데 말이다. 항상 에너지 넘치고,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소리 지르고, 또 울 때는 세상을 잃은 것처럼 펑펑 울고. 그리고 보라색, 오렌지 색 등 우리 눈을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색감도 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플로리다 어떤 모텔촌에서도 일어나고 있을 비극이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로 표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