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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Feb 09. 2017

당신의 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이 그리는 '평등한 사회'


<오만과 편견>은 제인 오스틴이 쓴 세계적인 명작이다. 이제야 이 책을 읽게 된 점이 몹시 부끄러우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늦게나마 이 책을 정독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오늘 완독을 하게 됐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오만'과 '편견' 극복 후 쟁취한 사랑 스토리는 명작이 되기엔 충분한 재미를 갖고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든 생각은 <오만과 편견>의 배경이 된 1800년대 초반 영국이나 지금 우리 사회나 오만과 편견이 팽배하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신의 오만과 편견, 안녕하십니까?

<오만과 편견>에 따르면 오만이란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허영심'과는 거리가 있다고 한다. 허영심은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지만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겸손함'의 표현이다. 그러나 오만은 진실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위치에 존재하여 그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그런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다. 편견은 자신의 판단이나, 남의 일방적인 견해를 잣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그런 태도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때로는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때로는 열등하다고 자기 자신을 판단한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오만과 편견인 것이다. 남들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그런 오만함, 그리고 열등하다고 생각할 때 갖는 사회에 대한 '편견'. 과연 우린 어떤 오만과 편견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학벌의 오만과 편견

대한민국은 오랜 기간 동안 학벌을 중요시하던 사회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의 우위로 학급에서도 어울리는 친구들이 구분되고,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다른 대학을 비하하기 바쁘다. 'OO대 VS XX대'라는 글만 검색해봐도 상대방 학교를 '디스'하고 자신의 학교를 옹호하는 그런 덧글들이 넘처난다. 일반적인 좋은 대학교,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다니는 사람은 자신이 '지방대'를 다니는 사람보다 실질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그런 '오만'에 빠진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낮은 대학교, '지방대'를 다니는 사람은 그런 명문대 사람들이 자신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긴다는 '편견'에 사로잡히기 일쑤인 게 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내가 생각해본 대한민국 버전 <오만과 편견>.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는 장면을 각색해봤다. 


박 다아시: '난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학교 출신이니까 사귀자 하면 나랑 사귀겠지'


김엘리:'쟨 최고의 명문대 출신이니까 나 같은 건 무시만 하면서 살았겠지? 딱 봐도 거만해 보여'


박 다아시: 김엘리 씨. 전 당신을 오래전부터 열렬히 사모했습니다. 당신처럼 지방대 출신 여자와 사귀면 나에게 신분적인 이득은 없습니다. 그저 전 순수한 사랑만 있을 뿐입니다! 저랑 사귀어주세요!


김엘리: 뭐래, 이런 오만한 사람이. 지방대 출신이라고 지금 무시하는 거죠? 그럼 당신 수준에 맞는 여자랑 사귀세요.


박 다아시: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학교 출신인 내가 지방대 학생한테 차이다니... 



실제로 소개팅이나 미팅에 나가더라도 비슷한 대학 부류끼리 어울리게 된다. 아니, 애초에 비슷한 대학끼리 미팅, 소개팅이 주선된다. '급 낮은' 대학교는 아예 주선조차 안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오만한 태도로 똘똘 뭉친 모습은 흡사 1800년대 영국의 귀족 사교계를 연상시킨다.  


대학교 순위. 치열하게 서로 물고 뜯는다.


이런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사실 이런 학벌로 인한 오만과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다. 어쩌면 평생 벗어나기 힘들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고, 나름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했다. 어떻게 보면 명문대라는 타이틀을 인정받고 싶고, 그런 타이틀을 이용해서 남들보다 높은 위치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싶어 하는 심리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오만과 편견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학벌을 통해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는 그런 '오만한 생각'은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서 버리게 됐다. 


오만과 편견의 극복

한 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토론을 벌인적이 있었다. 주제는 앞서 포스팅했던 '독서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토론이었다. 나름 내 주장을 잘 정리해서 상대에게 보여줬는데, 그 상대는 논리 정연하고 불편부당한 근거를 통해 내 의견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결과는 나의 패배였다. 패배로 부들부들하고 있던 차에 그 사람의 페이스북 프로필을 염탐해보았다.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 명문대 학생인지 보려고 했던 심산이었던 것이다. 웬걸, 이름도 모르는 지방대생이었다. 난 무의식적으로 날 토론에서 이긴 사람은 나보다 좋은 명문대, 소위 말하는 SKY 대학 출신 사람일 것이라는 그런 오만한 생각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과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학벌을 통해 상대를 평가하는 그런 태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블로그를 하다 보면 글을 기가 막히게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이 다 명문대생인가? 그럴 리가 없다. 그 사람들의 글을 먼저 본 게 아니라, 학벌을 먼저 보았다면 과연 대다수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 훌륭한 필력을 인정할 수 있었을까? 이 또한 그렇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색안경을 내려놓자

대한민국에 뿌리 박힌 학벌주의. 쉽게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은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오만함'과 나보다 높아 보이는 사람이 우릴 업신여길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는 그런 사회의 도래를 노래했다. 그리고 그 희망찬 노래는 몇 백 년간 이어져내려오고 있다. 이젠 제인 오스틴의 희망에 부응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자신이 끼고 있는 학벌이라는 색안경을 내려놓고 이제 서로를 평등하게 바라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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