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 속에서 게으름의 가치
살다 보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진짜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침대에 누워서 영화를 보고 친구와 수다나 떨고 싶어 지는 날. 반복되는 일상의 루틴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저지르고 싶어 지는 날. 그게 바로 어제였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매일매일 공부 계획을 짜고, 목표를 향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으면서 책을 읽고, 영어 단어를 외웠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달렸다. 오죽하면 내 좌우명이 'sin prosa, sin pausa'였을까. 스페인 어구인데 '서두르지 않고, 멈추지도 않고'라는 뜻이다. 꾸준히 습관처럼 공부를 한다면 나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게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직 공부가 습관이 덜 됐었나 보다. 점점 피곤해지더니, 그냥 무기력해져 버렸다. 슬럼프에 빠진 것은 아닌데 그냥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뭔가 '힐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좋아하는 초콜릿도 먹어보고, 노래도 들어봤다. 하지만 기분이 썩 달라지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쉬기로 했다. 무심코 튼 MP3에서 흘러나온 빅뱅의 '에라 모르겠다'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루 정도는 뒹굴거려도 인생이 망하진 않을 거야라며 그냥 누워서 TV나 보기로 했다. 어차피 PD 지망생이라면 TV 자주 봐야 한다며 자기 위로를 하며.
영화를 보고,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고
근데 이런 오래간만의 '게으름'의 효과는 뛰어났다. TV를 틀어서 영화를 한 편 봤는데, 메말랐던 감수성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한 동안 보지 않았던 영화의 가치를 다시 깨달았다. 브라운 관 너머로 내가 노상 보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나에게 새로움을 선물했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길들여지던 나의 머릿속에 새로운 활력소가 들어왔다. 생각도 더 창의적이게 되고 세상이 조금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만히 침대 위에 누워서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토익 걱정, 한국어 능력 시험 걱정, 서평 걱정에서 벗어나서 오로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니 마음이 평온해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더욱 명확해 보였다.
용기를 내서 게으름을 피워보자
비록 지금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가끔은 '게으름'을 피워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바빠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많지만, 그래도 피울 수 있을 땐, 피우는 게 좋지 않을까.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시간, 흔치 않으니까.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땐 용기를 내서 한 번 게으름을 피워보자. 90분 동안 안 외워지는 영어단어 몇십 개를 들고 씨름하는 것보다 좋은 영화 한 편 보는 게 당신의 인생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게으름이 지나쳐서 나태가 되면 안 될 것이다. 적당한 게으름, 당신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