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찾아오는 열병 같은 향수병
늦은 밤, 들리는 거라고는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뿐인 텅 빈 골목길을 터벅터벅 걷다 보면 어느새 내 자취방 앞이다. 매일 밤 난 집에 가지만, 난 가끔 집이 그리워진다.
아기 새의 둥지 같은 집
난 어렸을 때부터 지독한 향수병을 앓았다. 보통 사람들은 외국에 멀리 떠났을 때 향수병에 걸린다. 하지만 내 경우엔 그냥 집을 떠나면 향수병에 걸렸다. 집을 그리워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집에 '집착'하는 수준이었다. 집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잠을 자게 된다면, 정말 큰일이 났다. 얼마나 향수병이 심했냐면 집을 떠나 10분 거리에 있는 유치원에 가도 집에 가고 싶어서 눈물을 글썽이던 나였다. 보이스카우트, 영어 캠프에 가게 되면 밤마다 배갯잎을 집에 대한 '집착'으로 흠뻑 적시곤 했다.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따뜻한 집. 아기 새의 둥지 같은 그런 안락하고, 믿음직한 집이 좋았다.
시간이 흘러서 지독한 향수는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내 키는 커져만 갔고, 집은 작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집은 더 이상 점점 더 커지는 날 가둬둘 순 없었다. 그렇게 난 집이 아닌 곳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됐다. 고등학교 땐, 독서실과 학교. 대학교 땐 술집과 동아리방. 지금은 혼자 원룸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집보다는 그냥 '잠자는 곳'이라고 부르고 싶은 곳. 그렇게 집과 멀어져만 갔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집이 그립다
그렇게 집에 대한 집착은 이제 옛날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어렸을 적 습관이 눈에 담겨있는 것 같다. 가끔은 눈에 매달린 집에 대한 그리움을 남몰래 훔치곤 한다. 집에 밥이 없어서 삼각김밥으로 때울 때, 물이 없어서 사러 나가야 할 때, 난 다시 집이 그리워 울상 짓던 유치원생이다. 그렇게 열병 같은 향수병이 종종 다시 찾아온다.
자취 생활을 하면서 가장 그리운 것은 단연컨대 따뜻한 집밥이다. 전국의 자취생들은 동감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그리운 것은 잠만 자고 밥만 먹는 그런 장소가 아니다. 아마 내가 그리운 것은 눈물 많던 유치원생을 언제나 품어준, 가족들이 기다리는 커다란 집인 듯하다.
가끔 , 집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