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하는 세계, 망설이는 여자 :

이야기는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by 타자 치는 snoopy


왜 로맨스여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카페 홈즈에 가면?> 앤솔로지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양주 집 - 동네 책방 - 도서관 - 경춘선 - 카페 홈즈가 동선의 전부인 조영주 작가에게 로맨스 소설이라니... ! <죽은 이의 자화상>은 커트 코베인, pc 통신, 그리고 수취인 불명의 러브레터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랑은 불완전연소된 채 그 시절의 추억 속에 봉인되었다. 그런데 또 로맨스라니...?



종말과 로맨스가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차라리 김동식 작가의 <에필로그>처럼 뻔뻔하게 자기 자신과 앤솔러지 참여 작가들의 에피소드를 전면에 배치해 놓고 대단한 종말 소설을 쓸 것처럼 사기를 치다가(작가 김동식이 그랬다는 게 아니라 소설 속 사이코 김동식 작가가 그랬다는 얘기다. ㅋ), 정말 예측불허의 허무맹랑한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반전이 백만 배는 나아 보였다. 알고 봤더니 <모두가 사라질 때> 종말 앤솔로지를 기획 단계부터 진두지휘한 ‘브레인’ 정명섭 작가의 밑그림이었다. 애꿎은 조영주 작가만 ‘종말’과 ‘로맨스’를 이종교배시키기 위해서 피똥을 ㅆ... 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이야기의 소재가 얻어 걸렸(다고 들었)다. 경춘선을 타고 가는 길에 최하나 작가의 <반려견과 산책하는 소소한 행복일기>를 읽는데 정신이 팔려서 그만 가방을 잃어버릴 뻔했던 에피소드가 조영주 작가를 살렸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 분실한 가방, 애정 하는 떡볶이, 그리고 촌티 나는 썸이라는 삼위일체 소재의 콜라보가 로맨스 단편소설이 되어 태어났다. 많이 못났지만 꽤나 멋진 구석도 있어서 여자 주인공의 애를 태우는 남자 주인공 동구는 <반려견과 산책하는 소소한 행복일기>에 나오는 토이푸들의 이름(oh my dog!)이다.



‘썸’이라는 소재에서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이들의 이상한 로맨스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로맨스의 대전제는 이렇다. 해환과 동구가 사귀고 그 과정을 해환이 소설로 써야 만 세계가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 동구는 신탁을 받았노라고, 그래서 해환과 사귀어야 한다고 다짜고짜 연애질 시작을 제안한다. 이게 뭐야? 알콩달콩 밀땅의 스릴도 없고 종말과 로맨스는 잘 섞이지 않는 짜파게티 면과 소스처럼 버석거린다. 106쪽, 카페 홈즈 사장이 종말을 코앞에 두고 재회한 해환과 동구의 사진을 찍으며 “이 순간을 인류의 위대한 도약으로 남겨놓겠습니다.”라는 갑툭튀 대사를 치기 전까지 이 기이한 로맨스 소설은 흡사 따로 국밥 같았다. 응?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조건 없는 사랑’이 인류의 도약이라는 비약이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휘청거리는 나에게 꽂힌 카운터펀치. ‘세계의 멸망이 나의 소설에 달렸다. 나의 소설이 정말 하나의 세계라면, 이야기가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면...’ 무언가를 의심 없이 믿는 순간마다 세상의 기적은 시작된다. 이야기라는 하나의 세계, 그 이야기에 대한 결이 다른 믿음, 가짜가 진짜로 몸을 바꾸는 위대한 도약. 평론가 김현의 ‘소설은 왜 읽는가’라는 글이 생각났고 어떤 문장 세 구절이 망각 저 너머로부터 소환됐다.



여기는 구경거리의 세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꾸며낸 것
하지만 네가 나를 믿어준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
- It’s only a paper moon, 빌리 로즈 & 에드가 이프 하버그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서문 中




이 가정법 구문의 방점은 ‘네가 나를 믿어준다면’에 찍혀 있다. 해환과 동구의 로맨스는 망망대해 위에 떠있는 부표처럼 허망하다. 둥둥 떠다니는 기표를 붙들어 맬 수 있는 것은 ‘믿음’을 질료로 한 ‘사랑’뿐이다. 위대한 비틀즈가 이미 노래하지 않았던가. 필요한 모든 것은 사랑뿐이라고. 나는 5톤짜리 해머로 뒤통수를 가격당한 듯 멍하게 풀린 눈동자로 고장 난 턴테이블의 바늘(카트리지)처럼 그 구절을 읽고 또 읽었다. ‘세계의 멸망이 나의 소설에 달렸다. 나의 소설이 정말 하나의 세계라면, 이야기가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면...’



나는 보온 물주머니를 가슴에 안고 침대에 앉아 스마트폰의 가상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이 소설을 읽는 세상의 누군가가 해환과 동구의 사랑을 믿게 된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예정된 세상의 종말이 조금씩 유예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야기의 힘을 통해 하루치의 목숨을 연장하며 천일을 버틴 세헤라자데의 목숨을 건 모험처럼. 진짜 사랑은 이 세계의 종말과 함께 우리를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조영주 작가를 아주 쬐금 알고 있을 뿐이다. ‘sns 친구’라는 정의의 거리만큼. 김동식 작가나 정명섭 작가는 쥐뿔도 모른다. 언젠가 북토크 때 먼 발치에서 봤을 뿐. 아! 김동식 작가와 악수를 나누고 사인을 받은 적이 있기는 하다. 나는 그저 이 제멋대로의 글을 심심풀이로 썼다. 세 분 작가 모두 무람없는 내 글을 양해해주셨으면 좋겠다. 아니면 말고.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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