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극장 풍경은 단출했다. 조조 상영관엔 마누라와 나 그리고 뒷줄의 남성 관객 셋뿐이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세 모녀(수잔 서랜든, 케이트 윈슬렛,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노랫소리가 불 꺼진 상영관에 울려 퍼질 때 뒷줄의 남성 관객이 훌쩍이는 소리를 들었다. 짜고, 맵고, 달고, 시었던 <노팅 힐> 저녁 식사 장면을 닮은(<완벽한 가족>의 감독 로저 미첼은 <노팅 힐>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크리스마스 만찬 장면부터 마누라가 이미 한참을 울고 난 뒤끝이었다. 울기만 한 건 아니고 <노팅 힐> 때처럼 자주 웃기도 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에 던지는 농담들은 평소보다 농도가 짙다. 그 와중에 나는 엔딩 크레딧의 '번역 황석희' 다섯 글자를 보고 반가웠다. 썰렁한 농담과 T.M.I 취향 때문에 가족들이 무시하던 극 중 사위 마이클(레인 윌슨)처럼. 이상한(그리고 마지막이 될) 크리스마스 파티에 모인 가족들은 전혀 완벽하지 않아서 '완벽한 가족'이 되었다.
<완벽한 가족>을 보고 집에 와서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올리버 색스의 <고맙습니다>를 꺼내 읽었다. 영화의 순간들이 색스가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쓴 문장들과 겹치면서 이전에 읽었던 느낌과 다르게 다가왔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 선택에 달렸다. 나는 가급적 가장 풍요롭고, 깊이 있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지난 며칠 동안 나는 내 삶을 마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일종의 풍경처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삶의 모든 부분들이 하나로 이어여 있다는 느낌을 더욱 절실히 받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내 삶에는 더 볼일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더없이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 두렵지 않은 척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이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남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나도 조금쯤은 돌려주었다. 나는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썼다. 세상과의 교제를 즐겼다. 무엇보다 나는 이 행성에서 자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수잔 서랜든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존엄한 죽음을 선택한 엄마를 지켜보는 딸이 (정말) 된듯한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는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극 중 크리스(둘째 딸 애나의 게이 연인)가 읊조린 마그네틱 필즈의 노래 가사 '하루는 너무 느리게 흘러가고 일 년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The days go by too slowly, and the years go by too fast.)'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네요. 누가 어떻게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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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개봉했지만 상영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스크린에서 내리기 전에 얼른, 집 근처 극장으로 달려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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