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회사 건물 지하 구내식당은 소문난 맛집이다.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러다 작년 초,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점심 인파와 뒤섞여 밥을 먹는 일이 부담스러워졌다. 샐러드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10개월 동안 먹었다. 처음엔 이렇게 오래 먹게 될 줄 몰랐다. 강제로 시작한 채식은 공기를 씹는 것 같아 한동안 고통(응?)스러웠지만, 먹다 보니 속도 편하고 정량이라 과식도 안 하게 돼서(뷔페식은 재앙에 가까운 과식을 부른다. 누가 나 좀 말려줘요오~ 나날의 연속 ㅋ) 좋아하게 되었다. 그땐 선택지가 샐러드 도시락밖에 없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자 구내식당 사장님의 고민도 깊어졌다. 작년 연말부터 새 도시락 메뉴(가격은 모두 동일. 5,500원)가 나왔다. 밥, 반찬, 국 3종 세트. 일단, 맛있다. 과일이나 채소만 씹다가 밥을 먹으니 살 것 같았다. 집 나갔던 포만감도 돌아왔다. 역시, 인간은 탄수화물을 씹어야... 혀와 위가 행복해진 대신 2가지 고민이 생겼다. 쓰린 속과 생활 쓰레기 문제.
샐러드 도시락만 열 달 먹다가 밑간이 센 반찬이 들어가니 속이 뒤집어졌다(반찬 문제가 아니라 내 위장 문제). 짜고 맵게 느껴져서 안 그래도 적은 밥 양이 턱없이 모자랐다. 어쩔 수 없이 반찬을 많이 남겼다. 샐러드 도시락을 먹을 땐 도시락 바닥까지 싹싹 핥아먹고 물로 씻어 도시락 용기를 재활용 쓰레기로 버렸다. 싹싹 다 먹을 수 없는 새 도시락 메뉴는 음식물 쓰레기(매운 반찬, 닭 뼈 등)가 많이 나와서 내가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비닐봉지, 도시락 용기를 묶는 고무줄, 국을 담은 용기가 넘어지지 않게 밑바닥에 붙인 스카치테이프, 일회용 나무젓가락과 플라스틱 수저 등 도시락 구성물은 모두가 일회용품 덩어리였다. 집에서 수저와 포크를 가져와 쓰고 '일회용 나무젓가락과 플라스틱 수저는 넣지 말아 주세요'라고 부탁을 드렸지만, 나 역시 일회용 쓰레기 배출에 일조하는 중이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요즘 사람들 고기 정말 좋아하나 보다. 나도 고기를 맛있게 먹기는 하지만 굳이 찾아 먹는 편은 아니다. 나는 고기보다 나물이나 두부가 더 좋은 종류의 잡식동물이다. 그런데 도시락 반찬엔 매 끼니마다 세 가지 고기(돼지, 닭, 소)가 꼭 함께 나온다. 소비자의 요구가 있으니 도시락 메뉴를 이렇게 구성하는 것이겠지만, 과하다 싶은 인류의 육식 욕망과 공장식 축산의 폐해가 불러일으킨 환경 문제의 나비 효과가 오늘 코로나 사태의 주범이란 데에 생각이 미치면 고기반찬이 자꾸 목에 걸린다.
코로나 때문에 피치 못할 선택을 했지만 점심을 먹을 때마다 일회용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새 도시락 메뉴를 계속 먹을 것인지 고민 중이다. 환경을 생각해서 그나마 일회용 쓰레기를 덜 배출하는 샐러드 도시락으로 바꿀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구내식당에 내려가 거기서 밥을 먹는 것이 좋을까? 코로나 시대가 낳은 내 작은 딜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