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레나와 남자들 Elena et les hommes 1956
장 르누아르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은 그의 아버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그린 인상파 화풍의 풍경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아름다운 감흥을 준다. 아들 장의 영화는 풍경화보다 시대를 담은 풍속화에 가까운데, 특히 롤렌 장군 환영 퍼레이드에 몰린 북새통 군중 장면은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물 흐르듯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롤렌 장군이 누군지도 모른 채 우연히 인파에 휩쓸린 폴란드 공주 엘레나(잉그리드 버그만)는 열광하는 군중들에 치여 3분 27초 동안의 짧은 모험을 겪게 되는데, 이 시퀀스의 촬영, 편집 리듬, (군중 엑스트라의) 연기 합, 미장센, 타이밍 등이 기가 막히다. 흥분한 파리 시민들은 하나같이 프레임 밖을 보며 환호하는데, 정작 그 환호의 대상인 롤렌 장군은 한 번도 프레임 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카메라는 계속 롤렌 장군의 모습을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군중의 호기심 어린 얼굴을 비추고 그 호기심은 고스란히 보이지 않는 화면(프레임)의 바깥 풍경을 상상하고 있는 관객들의 궁금증으로 전염된다. 그러다 엘레나가 군중 사이를 떠밀려 다니는 장면이 시작되는데, 엘레나가 빙글빙글 왈츠를 추듯 '젊은 남자(헨리) - 누군가의 아이(토토) - 전망경 - 다시 아이 - 전망경과 아이의 맞교환 - 다시 남자' 사이를 순회하며 회귀하는 편집의 리듬은 무도회장의 우아하고 경쾌한 움직임이나 호흡과 닮아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09:06 - 12:30)
1956년의 잉그리드 버그만은 불륜과 이혼 등의 스캔들로 바닥을 쳤던 시기. 나락까지 떨어진 그녀에게 장 르누아르 감독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고 <엘레나와 남자들>로 버그만은 보란 듯 재기에 성공한 후 할리우드로 복귀해 <아나스타샤>에 출연했다고 하는데(영잘알 지인이 알려주신 뒷얘기 ㅎㅎ), 위태로웠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던 잉그리드 버그만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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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간 '형이 거기서 왜 나와?'의 원조 줄리엣 그레코가 뜬금없이 신스틸러로 등장해서 <Miarka>를 부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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