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 장 보러 가서 화분 세 점을 사 들고 왔다. 신비로운 히아신스 향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히아신스 꽃을 본 건 처음이었다. ‘10만 원 이상 사면 2만 원 할인 쿠폰’과 ‘9시까지 영업’ 안내 방송에 사로잡힌 장 보기는 만만찮았다. 돈 값어치가 없는, ‘계란 한 판에 9천 원’ 시대에 살고 있다는 실감이 피로와 함께 몰려왔다. 못나고 비싸기만 한 사과 대신 천혜향을 샀다. 소고기 산적 대신 작은처남이 보내준 돼지갈비를, 막걸리 대신 일전에 사 두었던 와인을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순간, 세상 일은 모두 변한다. 변화가 많은 상차림에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가 당황하실지 아니면 좋아하실지 궁금하다. 재래시장엔 사람들이 둥둥 떠 흘러 다녔다. 가판대에서 부치는 전이 기계에서 뽑은 공산품처럼 쏟아졌다. 전은 부치고 부쳐도 끝이 없다. 사위가 고요한 새벽, 오마라 포르투온도의 목소리가 기름 냄새 속을 배영으로 헤엄친다. 염색약을 바르고 정성껏 빗질해 주는 마누라의 손길이 문득 경애롭다. 밤을 예쁘게 치는 일은 여전히 더디고 어렵다. 텔레비전에선 설 특선 영화 <라라랜드>가 한창이다. 곁눈질로 다시 보는 <라라랜드>는 사랑 영화인 줄 알았는데, 이별 영화였구나. 불가능한 꿈을 꾸는 이들의 슬픈 자화상. 기름 냄새 사이로 자맥질하는 밤. 히아신스 향이 설 아침을 깨웠다. 마트 한구석 ‘설 상차림 모음전’ 코너에서 사 온 초는 검은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렸다. ‘요리하다’의 사골 국물로 끓인 떡국이 맛있어서 흠칫 놀랐다. 아침 식사를 위해 창문을 타고 넘어오려던 혼령들이 빨래 무더기에 걸려 자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차례상 위의 천혜향과 돼지갈비가 갸륵하다. 설 연휴 동안 제주도가 미어터진다는 뉴스는 남의 일이다. 내가 붙잡고 있는 허깨비는 뭘까? 그래도 세계는 조금씩 변할 것이다. 나는 어제를 살고 오늘을 견딘다. 엄마는 며느리가 부친 녹두 빈대떡이 마음에 드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