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Maudie)>
타자 치는 스누피가 선별한 네 편의 'PAPER스러운' 영화 (3)
오래도록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내 사랑 (Maudie)>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말했다. '어디로 옮겨 가도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가 태어나고 그림이 생겨난다.' 몸이 불편한 모드(샐리 호킨스)는 터널처럼 외롭다. 모드의 삶은 아름답지 않았지만 그녀의 그림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아름답게 채색한다. 힘들게 만난 짝 에버렛은 그림을 그리는 모드에게 쓸모없는 짓을 한다며 화를 내지만 쓸모없는 것 같던 그림들이 5달러씩에 팔려 부부의 밥이 되고 삶이 된다. 그 쓸모없는 것들이 인생을 작은 행복들로 가득 채우고 낡은 양말 한 켤레 같은 그네들 삶은 모드의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다. 모드는 붓 하나만 있으면 바랄 게 없다. 그림은 모드의 전부다. 모구 다카하시(PAPER 2019년 봄호)와 '순천 소녀시대' 할매들(PAPER 2019년 겨울호)의 순진무구한 그림을 볼 때마다 영화 <내 사랑>에서 본 모드의 그림이 생각났다. 모드의 그림을 모구나 할매들 그림에 슬쩍 섞어 놓으면 누가 그린 것인지 모를 만큼 서로 닮았다. PAPER는 순진무구한 아이의 그림 같은 잡지다. 놀이하듯 즐겁게 창간했고 아이가 자기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그리듯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왔다. 누군가에게 PAPER는 쓸모없는 말 무더기일 수도 있다. 효용성에 목숨 건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쓸모없는 게 하나쯤 있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아니, 오헤려 어떤 쓸모없음이 삶 속에 중요한 쓸모를 이끌어내지 않을까... 이 종이 잡지 한 권의 쓸모없음이 세상의 빈 곳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우는 날, PAPER에 모드의 그림을 싣고 싶다. 그때까지 PAPER여, 오래도록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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