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난 물고기 모어(毛魚)를 만나다

by 타자 치는 snoopy



모어(모지민)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PAPER 2018년 봄호에 실린 뮤지션 이랑 인터뷰 꼭지의 사진 한 장을 통해서였다. 드랙퀸 아티스트 모어와 함께한 이랑 <신의 놀이> 낭송회. 외쿡 영화 <프리실라>나 <투 웡 푸>의 스크린 속에나 있는 줄 알았던 드랙퀸이 한국 땅에도 살고 있다니! 이훈 감독의 영화 <마스카라>(1994)에서 김해주 역을 한 배우 하지나 씨가 실재 트랜스젠더라는 걸 알게 됐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모어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모어라는 존재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 건 한 장의 결혼식 사진 때문이었다. 2020년 PAPER 봄호 '어떤 가족' 특집에 실린 아름다운 사진 속에서 5월의 신부(두 사람은 2017년 5월 24일 결혼했다)는 털북숭이 남편 제냐(에브게니 쉬테판)와 함께 행복의 절정을 맛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의 사랑이 점점 아름다워지기를 바란다'라는 제목의 글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장미꽃처럼 붉어 보였다.

2022년 6월 23일, 손꼽아 기다리던 영화 <모어>를 보고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GV 행사에 참석했다.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는 제냐 님의 사랑 때문에 힘든 시간을 이겨내셨다고 들었는데, 왜 모어 님은 (담배 끽연과 믹스커피, 그리고 포켓몬고를 사랑하는) 제냐 님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지 않는 건가요?" 관객들이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고, 모어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냅다 까라 미친년 널뛰듯 "니가 뭘 알아아~!?" 소리를 질렀다. 7월 26일 씨네큐 GV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극장에서 부모님과 함께 영화를 보게 됐다는 모어의 말을 듣고, 영화 <모어>를 본 가족들의 소감은 어떨까 궁금해서 일요일 GV에도 참석했다. 극장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여느 GV 행사와는 사뭇 다른 감동적인 순간들을 오롯이 함께 할 수 있어 기뻤다.

2022년 7월 4일, PAPER 잡지에서나 보던 인터뷰이 모어 님을 PAPER 인터뷰어로 직접 만났다. 모어 님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살짝 설렜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가까이서 본 모어 님의 눈은 깊고 슬프고 아름다웠다. PAPER 덕분에 누리는 호사. "기자님, 제 영화 안 보셨죠?" 모어 님이 내게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GV 때 받아 프라이탁 가방에 달고 있던 영화 <모어>의 가방 브로치를 보여주었다. "어머~ 고객니임~!!"

야외 촬영을 진행하는 이생 & 오창동 포토그래퍼 옆에서 나는 (너무 더워서) 미안한 마음 반, 한편으로는 인터뷰를 하게 돼 즐거운 마음 반을 담아 양산을 들어 햇볕을 가리고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34도 땀 줄줄 땡볕 촬영이 끝나고 인터뷰 장소인 PAPER 사무실로 이동하는 차 안.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본 모어 님과 음악 이야기가 불붙었다. LP, CD, TAPE로 하루 종일 귀에 피가 나도록 음악을 듣는다는 모어 님에게 k. d. 랭의 <drag> 카세트테이프를 선물로 드렸다. 애정 가득 찐한 눈빛과 수만 발의 하트 뿅뿅을 받았다. k. d. 랭이 출연했던 영화 <연어알>을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보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털어 샀던 테이프였다. 귀한 걸 알아봐주시고 좋다고 해주시니, 선물한 사람으로서 더 감사할 따름.

인터뷰가 시작됐다. 털 난 물고기 모어(毛魚)는 모어(毛語)를 한다. 자기만의 언어로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드랙퀸 혹은 춤꾼이라기보다 자신이 입을 무대 의상이나 소품을 직접 만들고 심혈을 기울여 퍼포먼스 음악을 고르고 드랙쇼를 섬세하게 디렉션 하는 종합예술인(드랙퀸 아티스트)이었다. 양희은의 <봉우리>를 틀어 놓고 감히 딜도를 꺼내 흔들어 댈 생각을 한 이가 누가 있을까. 전무후무, 유일무이. 모어라는 존재는 모어만이 정의할 수 있고 모어만이 깰 수 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톰 웨이츠의 노래 '미니애폴리스의 창녀로부터 온 크리스마스카드' 생각이 났다. 영화 <스모크> 엔딩 장면에 흐르던 'Innocent when you dream' 생각도 났다. 그/그녀가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 안무를 맡았을 당시 쓴 글을 떠올렸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 아름답게 태어났지만 세상이 말하는 아름다움과 비교되는 순간 그 아름다움은 힘없이 무너진다.'라고 말하던. 세상의 아름다움에는 그때까지 일상을 견딘 치욕이 스며있다. 당신은 그 치욕마저도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인터뷰가 끝났다. 들고 간 조니 미첼의 <Both Side Now> CD에 사인을 받았다. ‘우리가 무엇이 될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지 않을까요?’ 혼잣말로 그런 질문을 했던 것 같다. 당신의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부디, 당신 존재 증명의 알리바이인 영화 <모어>가 <탑건>의 파죽지세를 뚫고 선전하시길. 당신의 첫 책 <털 난 물고기 모어> 451쪽에도 실린 2020년 PAPER 인터뷰 마지막 질문의 답변처럼, 그 계획이 근미래에 이루어질 수 있기를.​


+

당신의 MBTI는 전 세계 사람 중 1%밖에 없다는 INFJ(선의의 옹호자).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독창적이고 전무후무한 드랙쇼를 펼치나 봅니다. 재밌게도 내 MBTI 도 INFJ. 당신이 이렇게 되묻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아, 진짜!?"


인터뷰가 끝나고,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라고 물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버티고 살다 보니 이렇게 멋진 끼순이 누이가 생겼네요. 오래도록 당신의 몸이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싶습니다. 부디, 건강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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