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멸렬하게 사는 게 때로 짜증스럽고 별것 아닌 시시껍절한 일에 매몰돼 내 눈엣 가시가 거대한 들보처럼 느껴질 때, 문득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친구가 보내준 한 장의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작년 성탄절, 10년이 넘게 걸리고 12조가 넘는 돈이 들어간 인류의 위대한 여정이 시작됐다. 우주 관측의 대명사였던 허블 망원경의 임무를 바통 터치, 초기 우주 관측을 위해 만든 제임스웹 망원경을 실은 아리안 로켓이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발사된 것. 제임스웹의 주요 미션은 빅뱅 이후 초기 우주를 관찰하는 것. 현재의 빅뱅 표준 우주론의 또 다른 검증과 관찰을 위해 지구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아 최적의 관측 지점으로 알려진 L2(라그랑주2) 궤도로 약 150만 Km의 대장정을 떠났던 제임스웹이 발사 6개월여 만에 촬영한 우주 사진을 전송해 왔다.
제임스웹 발사 당시 친구는 말했다. 일반 가시광선은 우주 먼지에 가려진 부분을 볼 수 없는데 적외선으로는 가능하다고. 적외선 망원경이 아주아주 희미한 130억 년 전의 빛을 볼 수 있게 운영하려면 극저온 헬륨가스로 온도를 영하 270도까지 내려줘야 한다고. 제임스웹이 허블이 찍은 'extream deep field'보다 더 깊고 선명한 사진을 보내주길 손꼽아 기다리겠다고.
허블 망원경이 촬영한 'extream deep field' 사진은 관측 가능한 하늘을 1300만 개의 화소로 나누었을 때, 그중 하나의 화소(1/1300만)를 12일간 노출로 찍은 것인데, 이 1/1300만 화소의 우주 공간 안에 무려 2만 개의 은하계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우주에만도 사진 속 2만 개 은하 군락이 1,300만 개 더 있다는 얘기. 우주의 광대함은 그야말로 경이 그 자체다.
1/1300만 픽셀에 담긴 2만 개 은하의 사진을 보면서
김수영 시인의 시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를 떠올렸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二十) 원 때문에 십(十) 원 때문에 일(一)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一)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우주는 광대하고 인간은 티끌보다 작고 미미하다.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작은 것에 함몰되지 않고 크고 넓게 생각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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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웹이 보내 온 우주 사진들)
#허블 #제임스웹 #우주 #김수영 #어느날고궁을나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