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잡지를 사면 후기부터 읽는다. 후기 안에는 무언가를 만들어 낸 이들의 침, 땀, 콧물(피, 땀, 눈물까지는 아니라서 ㅎ)이 배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후기는 행간에 은폐/엄폐하고 있는 의미를 더듬으며 읽는 재미가 있다.
후기는 내 것보다 남의 것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 후기를 읽는 건 내 똥구멍(치부)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남의 후기엔 남의 살을 뜯어 먹는 쾌감이 있다(세상에서 제일 맛난 게 남의 살 아닌가 ㅎㅎ). 이걸 나 혼자 만들었노라고 떠들고 싶지만, 세상에 나 혼자 할 수 있는 건 자위 말고 아무것도 없다. 여기 각자가 그린 '지상의 방 한 칸'이 있다. 단 몇 줄에 담긴 그들의 세계를 읽고 또 읽는 일이 즐겁다. 무엇보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함께한 나카마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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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같은 습도와 무더위 속에서 늙고 낡은 시간을 애써 펼쳤다. 시간의 마디를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삐걱거리는 걱정을 하며, 아무도 읽지 않는 후기를 공들여 쓰는 꿈을 꾸었다. 제주 여행(이라 쓰고 출장이라 읽는다)에서 만난 사람들의 맑게 반짝이던 눈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푸른 제주 하늘이나 바다만큼 온몸으로 달려와 직진하는 말들이 내 마음에 꽂혔다. “돈은 못 벌어 힘들지만, 지금 이 순간 충분히 행복해요.” 마음의 줄기를 바투 쥐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은 내가 꿈꾸던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만큼이나 즐겁다. 그런 사람들의 발자국을 기록하는 일에 내 시간의 살점을 떼어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느꼈다. 통근 지하철에서 쫓기지 않는 마음의 눈으로 느긋하게 방화대교를 보고 싶었던, 덥고 습하고 뜨거운 여름이었다.
- 스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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