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혼돈이 나를 보고 있다

by 타자 치는 snoopy

김영하 작가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의 최고 미덕은 가독성이다. 2/3 지점까지 미친 듯 읽힌다. 속도감 있고 적절히 블랙 유머가 가미된 문체가 몰입감의 일등 공신이다. 한번 잡으면 단숨에 몰아치듯 읽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기억의 문제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두 개의 유사한 서사는 뒷부분에 가면 확연히 갈린다.

언뜻, 이야기의 추동자는 재기 넘치는 살인마 화자(1인칭 서술자)인 듯 보인다. 그러나 서사의 주인공은 은퇴한 연쇄살인마 김병수가 아니다. 이야기의 외연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마가 신세대 살인마 박주태로부터 자기 딸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로 독자들을 몰아가지만,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62쪽의 핵심적인 문장 :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을 만나면 1인칭 화자를 의심하게 되고, 130쪽에 도달하면 1인칭 화자의 진술이 쌓아 올린 세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주인공은 '혼돈'이다. 방점은 살인마들끼리의 '대결'이 아니라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 살인마의 '기억'에 찍힌다. 작가는 우리(독자)를 보고 있는 혼돈을 숨은 화자로 내세워 '인간의 기억과 존재의 심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1인칭 화자는 주체가 아니다. 치매에 걸린 살인자는 우리(독자)를 보르헤스의 미궁으로 초대한다. 그 미궁이 진짜 주인공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2/3 지점까지 미스터리 스릴러였던 이야기는 130쪽 지점쯤을 지나면서 갑자기 철학적 화두의 아포리즘으로 급선회한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쫄깃함을 좇았던 독자들은 무릎이 꺾이며 맥이 탁 풀릴 지경이다.

자, 그렇다면 <반야심경>의 구절을 두 번이나 반복하며 철학적 사유의 공간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는 이 소설을 어떻게 영상 이미지로 구축할 것인가? 원신연 감독에게 주어진 화두다. 예고편을 보니(물론, 예고편이 다는 아니겠지만) '기억을 잃어가는 살인마의 마지막 싸움'이라는 껍데기만 가져온 듯하다. 원작 소설의 영화화에 실패한 전작들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닌가 하는 기시감이 물씬 난다. 물론, <대부>라든가 <판타스틱 소녀백서>나 <올드 보이> 같은 성공 사례들도 있다. 모두, 원작을 '창발적으로 각색해 영상화'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영화적 성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미스터리 스릴러의 껍데기만 가져와서 <메멘토>의 아류 같은 분위기만 풍겨서는 원작 소설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내 사랑 십자 드라이버>에서도 그랬지만 김영하 작가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1인칭 서술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메모 혹은 일기 형식에 담은 짧은 문장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창조해 낸다. 그 세계는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간간이 블랙 유머까지 번득인다(9쪽 : 나는 슬픔은 느낄 수 없도록 생겨먹었지만 유머에는 반응한다). 오죽하면, 자기가 목 졸라 죽인 여인의 딸(은희)을 지키겠다는 연쇄 살인마에게 감정 이입(우리는 은연중에 김병수를 응원하게 된다)을 하게 될까. 그 매력적인 내면의 서술을 얼마만큼, 어떻게 화면 위로 옮겨 놓을 수 있을까가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성패의 관건이 될 터.


2017년 9월 26일

타자 치는 스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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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런 블랙 유머, 냉소, 반어, 시대상을 읽는 재미들 :

1) 연쇄살인범도 해결할 수 없는 일 : 여중생의 왕따 (40쪽)

2) 그때는 DNA 검사도, 폐쇄회로 TV도 없던 시절이었다. 경찰 수천 명이 작대기를 들고 애먼 야산만 쑤시고 다녔다. 그게 수사였다.

좋은 시절이었다. (33쪽)

3) 나는 시가 뭔지 몰랐기 때문에 내 살인의 과정을 정직하게 썼다. 첫 시의 제목이 '칼과 뼈'였던가? 강사는 내 시어가 참신하다고 했다. 날것의 언어와 죽음의 상상력으로 생의 무상함을 예리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거듭하여 내 '메타포'를 고평했다.
"메타포라는 게 뭐요?"
강사는 씩 웃더니ㅡ그 웃음, 마음에 안 들었다ㅡ메타포에 대해 설명했다. 듣고 보니 메타포는 비유였다.

아하.

미안하지만 그것들은 비유가 아니었네, 이 사람아. (11쪽)

4) 33쪽과 88쪽에 등장하는 시대상의 소묘.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의 묘사와 깡패들이 단지(손가락을 자르고 혈서를 쓰는)식을 하는 멸공 대회 등의 시대상을 어떻게 <살인의 추억> 식으로 녹여낼 것인가? 아마도 각색을 하며 모두 들어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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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감독은 영화 제작 단계에서 배우 캐스팅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야기의 성패는 온전히 배우에게 달려 있으니까. 스크린이 캔버스라면 배우는 물감이고 붓이다. 원작이 있고 구축된 캐릭터가 존재하는 영화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배우 설경구가 연기를 잘 한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다. 그의 연기는 늘 지나치게 에너지가 넘치고(나, 연기 잘 해! 그렇지?) '쿠세'가 있다. 어떤 영화를 보아도 캐릭터 대신 배우 설경구만 보인다. 최악은 <실미도>였다. 필모그래피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박하사탕>이나 <오아시스>를 봐도 감정을 억지로 짜내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관객을 자연스럽게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무리하게 관객 쪽으로 다가서려다 망친 연기를 많이 보았다. 차라리 어깨에 힘을 뺐던 '강철중 형사'나 <감시자들>의 '황반장'이 잘 맞는 옷 같다. 예고편을 보니 이번에도 힘이 너무 들어갔다. 늙은 살인마 연기를 위해 살도 많이 뺐다던데, 살 빼는 김에 어깨 힘도 좀 빼지... 안타깝다.

소설 속 뉴 페이스 살인마 박주태는 작고 다부진 체격에 쥐 상이다. 소설 캐릭터의 이미지와 배우 김남길은 영 어울리지 않는다. 자기 엄마를 죽인 살인마이자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의붓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보는 딸 은희 역에 설현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했다(물론, 반전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은퇴한 연쇄살인마의 기이한 부성애, 그리고 무너져 가는 기억의 키를 쥔 인물이 은희다. 그 복잡다단한 캐릭터를 가수 설현은 과연 어떻게 소화했을까? 또 한 명의 주요한 캐릭터 안 형사(영화에서는 안 소장) 역시 배우 오달수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캐스팅에서부터 삐걱거린다. 대체 어쩌려고.....

(영화화를 오래 기다린 소설이건만,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이럴지 저럴지 고민될 때, 살인마 김병수의 가장 산뜻한 해결책은 살인이었지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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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얼마 후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을 보았다. 슬픈 예감은 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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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기억법 #김영하 #길을잃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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