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 긴밀한 공생이 이룬 작은 기적

부제 : 할리우드 키드 오스카를 정복하다

by 타자 치는 snoopy

세계가 한 영화광에게 열광하고 있다.


영화에 굶주렸던 시절 tv 영화에 집착하던 소년이 있었다. '주말의 명화'와 '명화극장' 그리고 afkn 채널에서 금요일 밤마다 방영하던 야하고 폭력적인 영화에 매료됐던 소년은 TV 애니메이션 <코난>으로 영화를 배우고 여섯 달 동안 도넛 가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산 히타치 카메라를 품에 꼭 안고 잠들었던 청년이 되었다. 청년 영화광은 영화를 공부하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거장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 영화감독이 된 청년은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했다. 영화광이었던 할리우드 키드가 꿈의 공장 할리우드 한복판에서 자신의 영화가 하나의 장르가 됐음을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봉준호는 수많은 인터뷰에서 <기생충>을 '작은 영화'라고 소개했다. 제작비 150억 원의 영화를 인디 필름(독립영화)이라 부를 수 없지만 1,000억 원이 훌쩍 넘는 제작 규모가 일상인 할리우드 영화들에 비하면 한국에서 초특급 블록버스터로 불리는 <설국열차> 역시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에 불과했다. 백인 중심, 비영어권 영화에 대한 배타는 또 얼마나 견고한 벽이었던가. 그런 싸움에서 다윗이 이겼다. 감독상과 작품상이 발표되는 순간마다 LA 돌비극장의 장내는 출렁였다. 할리우드가 놀라고 세계가 놀랐지만 우리 자신조차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기생충>의 오스카 제패는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그렇다고 한국 영화의 수준이 하루아침에 세계 최고가 되는 건 아니다. WBC 대회나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이 일본 야구 대표팀을 꺾었다고 해서 한국 야구의 수준이 일본 야구보다 높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박찬호, 박세리, 김연아 등 몇 번의 선행학습 사례를 겪으며 깨달은 것처럼 한 명의 천재가 깨트린 편견의 장벽 틈새로 희망을 본 다음 세대가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봉준호 키드들이 그의 성공을 디딤돌 삼아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됐다는 것이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거둔 <기생충>과 봉준호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그 꿈의 가능성이 오스카 트로피 네 개보다 더 값지다.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2020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았고 김보라 감독의 <벌새>는 유수의 영화제에서 인정받고 있다.)


관객은 영화 한 편을 보고 즐기지만, 스크린에 투사되는 빛의 이미지 이면에는 수많은 그림자들이 그 빛을 떠받치고 있다. 각본상 수상의 영광은 온전히 봉준호 개인의 몫이겠지만 오스카 4관왕의 영예는 이 천재 감독과 협업하며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서포터즈(공동 집필 한진원 작가, 제작자 곽신애 대표, 투자자 이미경 대표, 양진모 편집자, 이하준 미술 감독, 통역의 아바타 샤론 최 외 수많은 스태프)가 함께 누려야 할 기쁨이다. 그의 머릿속 비전을 몸으로 표현한 명품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오락이자 상품이며 종합예술이다. 개인의 창의력과 긴밀한 협업을 통한 집단 창작의 결과물이기에 작품상은 모두의 것이다. 봉준호는 <기생충>의 세계적 성공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라 불리는 같은 국가에 살고 있다. 누군가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실패를 해야 한다." 다양한 관객들이 <기생충>에 공감하는 이유는 빈부격차 등 자본주의의 모순이 특정한 개인이나 국가를 넘어 인류가 함께 고민해야 할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신랄하게 뒤트는 봉준호식 블랙코미디 역시 자본의 뒷받침(제작비 150억 원)이 없었다면 관객들을 만날 수 없었다는 것. 더불어 제작비의 3배에 이르는 어워드 레이스 행사 진행비의 지원이 없었다면 올해도 오스카는 그들만의 잔치가 됐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 역시 돈으로 만들었다는 아이러니는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돈은 돈일뿐 세상에 '착한 돈'은 없다.


봉준호 감독의 감독의 20년 영화 인생은 두 가지 일로 채워졌다. 영화를 보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당시 봉준호는 자신의 꿈을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영화가 영화사에 클래식으로 기억되는 것. 그의 영화는 그가 사랑하는 세 편의 영화ㅡ김기영의 <하녀>,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ㅡ처럼 기억될 수 있을까? <기생충> 이후에 봉준호는 어떤 영화를 만들까? 그의 인터뷰에 힌트가 있다. "저는 사실 저 자신이 장르영화 감독이라고 늘 생각하고요. 영화를 볼 때 영화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장르적인 흥분 이런 걸 되게 좋아하고 항상 저도 그런 영화들을 보면서 자랐던 것 같고요. 눈앞에 정치적인 깃발을 들고 휘두르는 그런 영화들은 싫어하는데, 대신 영화적인 아름다움이나 흥분을 두 시간 동안 즐기고 집에 돌아갔는데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자꾸 뭔가가 생각이 나는,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 관한 이야기... 그런 쪽으로 점점 머릿속이 뱅뱅뱅 잠이 잘 안 오게 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60대에 <싸이코>와 <현기증>을 찍었다. 히치콕의 나이가 되는 20년 후의 봉준호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자신이 그토록 찍고 싶었던 영화를 완성하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영화에서 예상치 못한 많은 일들이 벌어지듯이 우리 삶에도 예상치 못한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미래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마도 그는 여전히 봉준호일 것이다. 스스로 장르가 된 영화광 소년.


아직도 흥분이 가시질 않습니다.

아카데미의 변화와 선택에 박수를 보내며

<기생충>의 오스카 정복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래도 제게 봉준호 월드 최고의 영화는 여전히

<살인의 추억><마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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