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Jul 24. 2018

그때의 널 언제나 사랑할 거야.

<라라랜드> 보고 쓴 제 이야기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두 번 보고야 알았다. 라라랜드가 이렇게 슬픈 영화였구나.


  <라라랜드>를 2년만에 다시 봤다. 별 다섯개가 모자랄 만큼 맘에 드는 영화라 극장에서 또 한 번 보고 싶었는데, CGV에서 짧은 기간 재개봉하는 걸 찾아냈다. 호들갑을 떨며 호다닥 예매했다. 영상이 아름답고 음악이 좋은 달콤씁쓸한 사랑 영화 라라랜드. 두 번 보면 어떨까 설레며 스크린에 집중했다. 그리고 2시간 후 알아챘다. 2년 전의 나는 영화를 완전히 잘못 본 거였다. 이건 가볍게 이야기할 아름다운 영화가 아니었다. 빛나는 시간을 함께 한 연인이 있었다면 후반부엔 눈물을 멈출 수 없는, 정말 슬픈 영화였다.


이하 모든 첨부 이미지의 출처는 영화 <라라랜드>입니다.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다. 서로가 학생이던 때 만나 직장인이 되고 나서까지 4년을 함께했다. 공강날을 맞춰 한가한 놀이공원에서 하루종일 함께 뛰어다니고, 가족도 없는 서울에서 며칠 몸살 앓는 동안 차가운 물수건을 갈아 주고, 취직이 잘 되지 않아 매일같이 울 때마다 토닥여 주고, 직장인이 되고부터는 돈보다 귀한 자기 시간을 오롯이 나에게 써 주던, 그런 사람이었다. 싸우고 며칠 연락도 하지 않던 때도 있었지만 곧잘 화해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당연히 서로의 곁에 존재할 줄 알았다. 어쩌면 평생.


  하지만 몇 달 전 우린 헤어졌다. 함께 보낸 긴 시간이 무색할 만큼 헤어짐엔 돌아봄이 없었다. 연애가 끝났으니 이제 뭘 해야 할까. 이전까지 짧은 연애가 끝나고 나면 그와 관련된 모든 물건을 버리고 사진을 삭제했었다. 어디 잘 사나 보자 이를 갈면서.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주고받은 선물부터 내 돈 주고 산 대부분의 물건에 크고 작은 기억이 엮여 있었다. 얼굴이 나온 사진을 지웠지만 웃고 떠든 시간이 담긴 모든 기억을 지울 순 없었다. 이 모든 걸 없앤다는 건 내 4년을 통째로 없던 일로 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되는 걸까, 아니 그럴 수 있기는 할까?



  배우가 되겠다는 미아, 정통 재즈를 잇겠다는 세바스찬. 이들은 함께하는 동안 서로의 인생에 가장 빛나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 시간은 두 번 다시 없을 아름다운 사랑을 해서 빛나는 게 아니다. 꿈을 향해 나아갔던 가장 중요한 시간에 서로가 있어 평생 감사할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재즈바를 꾸리겠다는 말을 웃어넘기지 않고 진심으로 응원해준 미아, 멀기만 한 배우의 꿈 앞에 좌절하는 미아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준 세바스찬. 비록 많은 사라진 연인들처림 서로에게 소홀해지고 자연스레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이후 그들이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건 그들이 함께 했던 시간이 있어서였다.


  학창시절 작가의 꿈을 가지게 해 준 동경하던 선생님, 함께 싸구려 맥주를 마시며 미래를 말하던 친구, 중요한 인생의 고비마다 나를 응원해 준 사람들. 비록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안다. 언제나 마음 한켠 감사하고 있다. 지난 연인도 마찬가지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함께한 그 사람을 내 인생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두 잊는 건 불가능한 거였다.


  지금은 우연히 길에서 마주하면 어색할 남이 되었지만 한때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 나를 지지해 주고 사랑해 준 그에게 감사한 마음은 남기기로 했다. 그때 네가 내 옆에 있어서 정말 행운이었다고.



  2년 전 함께 라라랜드를 봤던 네가 물어봤었다. "근데 왜 미아는 헤어지는 상황에서 '나는 언제나 너를 사랑할거야' 했을까?".  글쎄, 립서비스일까 했었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건 가장 처절했지만 그래서 빛났던, 찬란한 시절을 함께한 연인에게 건네는 찬사였다고. 그들은 그 시절을, 그 연인을 언제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고. 처음 영화를 봤을 땐 이해할 수 없던 그 말을 이제는 다시 만날 일 없는 네게 남긴다.


  "I'm always gonna love you."



* 매주 수요일, 취향 가득 담긴 제 글을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매일매일 읽을거리]도 소소하게 운영 중이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