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에 보내는 박수 짝짝짝
고등학생 때 처음 장기하와 얼굴들을 알게 됐다. 유머 사이트에 웃긴 동영상이라며 돌아다니던 그들의 4분 38초짜리 공연 실황은 공부밖에 모르던 고딩에게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저 털보는 누구지?
저 춤은 누가 생각해낸 거지?
어떻게 저런 곡을 부르면서 안 웃을 수 있지?
풀리지 않는 의문에 답을 찾고자 부모님이 열공하라고 사 준 아이리버 mp3로 영상을 수백 번 돌려봤다. 힘든 수험생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의 유니크한 퍼포먼스는 무조건반사 웃음ㅋ으로 나름의 삶의 낙이 되어줬다. 수능 잘 쳐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면 저런 이상한 사람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단 말이지! 라며 공부에 박차를 가했으니 mp3는 어떻게든 제 목적을 다한 것 같다.
다행히도 장기하와 얼굴들은 잠깐 반짝하고 만 밴드가 아니어서 꾸준히 곡도 내고 공연도 하니 팬질할 맛 났다. 단독공연을 매번 챙기는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앨범이 나올 때마다 몇 번을 반복해 듣곤 했는데 모든 앨범에 실린 대부분의 곡들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딱 그냥 장기하와 얼굴들스러웠다. 사람이 이렇게 꾸준하기도 쉽지 않은데 참 여러모로 대단한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지난달 나온 이번 <mono> 앨범이 유난히 튀었는데 컨셉이며 소개글이며 그건 니 생각이고,로 시작하는 수록곡들이 기대를 뛰어넘게 좋아서였다. 앨범 이름처럼 모노로 녹음했다는 이번 앨범에 담긴 건 유난히 쓸쓸하고 외로운 곡들인데 그 외로움이 그냥 별거 아닌 듯 얘기하는 덤덤한 목소리가 참... 그랬다. 지난 10년 내 옆을 나란히 걸어온 그 목소리 덕에 시험 망치고 연애 망하고 취업 못 하던 그 시절시절 내 외로움이 별거 아닐 수 있었다.
앞으로 이보다 좋은 앨범은 못 낼 것 같다, 박수칠 때 떠나겠다는 얼토당토않은 그들의 해체 이유에 어이가 없었지만 어찌 보면 기승전결이 완벽한 것 같기도 해 묘하게 납득이 갔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홀연히 사라지는 그렇고 그런 사이, 이건 내 생각이다만 그동안 살다 보니 이런 인연들이 가장 많더라.
가지가지 이유들로 속상한 날들, 내가 찾던 목소리는 '괜찮아! 힘을 내서 이걸 이겨내자 으쌰으쌰!' 하는 위안과 격려가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뭔지 '야 사는 게 뭐 있냐 원래 인생이 그렇지 근데 또 살다 보면 살아진다.' 하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시큰둥한 말들이 나는 더 좋았다. 초심 따위 개나 줘 버리라는 노래를 불러놓고 치사하게 박수칠 때 떠난다니 얄밉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앞으로도 찾아들을 고전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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