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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Feb 17. 2018

모든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판타지

두 번 본 <코코>에서 찾은 죽음에 대한 두 가지 희망

"<코코> 아직 안 봤어? 나랑 보러 가자."

"너 지난주에 봤다며?"

"리뷰 쓰려고 또 보려고 했어."




"와, 영화 진짜 좋았어. 인간의 상상력이란."

"… 엉."


  함께 <코코>를 본 친구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는데 목이 메 맞장구를 칠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픽사 팬이라고는 해도 이건 너무 좋잖아. 귀여운 생선, 말하는 개, 말 못 하는 로봇 같은 덕심 자극 캐릭터가 없는데도 이렇게 매력적인 영화라니! 특히 그 세계관. 기승전결 플롯이 완벽한 스토리도 물론 좋았지만 두 번째로 볼 땐 인물들을 둘러싼 세계에 눈길이 더 갔다. 내가 그렇게 기대했던 픽사가 그려내는 죽음 이후의 세계. 그곳에서 나는 죽음에 대한 두 가지 희망을 보았다.


이하 모든 첨부 이미지는 픽사 <코코> 스틸컷입니다.


  죽음이 그리 절망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

  

  13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영화 <신과 함께>, 원작 웹툰 팬이어서 뮤지컬은 물론 영화까지 보고 왔지만 마음속엔 사라지지 않는 불만이 있었다. 대체 저 신이라는 사람들은 왜 인간을 지옥에 보내지 못해 안달 난 것 같지? 범죄자야 인간 취급하기도 아까우니 논외로 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저지를 법한 작은 잘못으로도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지옥행 특급열차를 태워 보내니 어디 무서워서 죽을 수 있겠나.


  하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죽음 후에도 삶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삶인지 살아있는 인간은 아무도 모른다. 죽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수많은 상상이 뻗어 나왔다. 종교, 국가 할 것 없이 문화가 있는 곳에는 죽은 후의 세상에 대한 상상도 있다. 그중 픽사가 <코코>에서 가져온 것은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 멕시코에서는 먼저 죽은 사람들이 1년에 한 번 가족과 친구를 만나러 살아있는 자들의 세상에 놀러 온다고 믿어 그들을 맞는 축제를 연다고 한다.


  어머, 너 괜찮니?

  <코코>에서는 죽은 자들의 날에 죽은 자들의 세계로 강제소환된 주인공 미구엘을 통해 죽은 자들의 삶을 보여 준다. 낯선 세계에서 미구엘이 처음 이야기를 나눈 것은 구덩이에 빠진 그에게 손을 뻗은 지나가던 사람이었다. 죽은 자들이 건네는 친절은 작품 내내 이어진다. 대회에서 1등을 한 뮤지션만 참여할 수 있다는 파티에 미구엘을 몰래 데려가 준 밴드, 자신의 작품을 선뜻 구경시켜 주고 미구엘에게 의견까지 물어보는 프리다 칼로까지. 한평생 불편한 신체로 고통받던 그는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더 자유로워 보인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무원이 있고, 가족이 있고, 음악과 춤이 있고, 삶과 죽음이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잊히면 맞이하게 된다는 두 번째 죽음이 존재하는 것마저 언제 죽음을 맞을지 모르는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악을 처단하는 신이 없더라도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작복작 활기차게 지내고 있다. 죽음 후에도 삶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죽음이 조금 덜 두려워진다.

 

  죽은 자들에게 무언가 보탬이 될 수 있다는 희망


  할아버지, 할머니, 때로는 그보다 더 가까운 가족, 어쩌면 친구.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슬픔이다. 그 슬픔 앞에 우리가 무력해지는 것은 죽은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항상 '자주 찾아뵐 걸', '그때 그 말을 꼭 했어야 했는데' 하며 후회하지만 그들과 우리의 시간에는 더 이상 접점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체념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면서.


  하지만 <코코>에 등장하는 죽은 자들에게는 살아 있는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게 분명히 있다.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에 대해 살아있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 살아있는 자들의 세상에서 그들이 잊히지 않는다면 그들도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다. 커다란 비석을 세워 주거나 어마어마한 제사상을 차릴 필요도 없다. 그저 그들을 잊지 않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죽은 자들에게 가지는 끝없는 미안함도 조금은 덜어질 것 같다. 우리가 죽은 다음 그들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거리도 생기겠다. 당신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앞으로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지 않겠냐고.

  


  살아 있는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사람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한다. <코코>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기에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죽음 후의 세계, 하지만 그걸 '알 수 없기에 두려운 세계'가 아니라 '알 수 없지만 어쩌면 행복한 세계'로 상상한다면? 이런 따뜻한 상상이 있어 죽음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위안을,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마주한 사람이 안도를 얻는다면 그만큼 선한 상상은 흔치 않을 거다. 내가 살아서 이 영화를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언젠가 나도 가게 될 죽은 자들의 세계, 이왕이면 이렇게 따뜻한 곳으로 상상하고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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