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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l 24. 2016

<도리를 찾아서> : 픽사에 바라는 것이 생겼다

영화를 이미 보셨거나, 앞으로 볼 계획이 없는 분께서 읽어 주세요!

  "Unforgettable, That's what you are-"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오면 형광등 대신 조명등을 켜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재즈 음악을 듣는 게 내 삶의 낙이다. 마니아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손에 꼽는 좋아하는 곡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Nat king cole의 <Unforgettable>. 나지막이 "언폴게러블~ 댓ㅊ 웟 유 아~" 가 들려오면 몸과 마음이 아지랑이처럼 흐물흐물해지는 기분이다. 가사도 뭐 하나 뺄 것 없이 좋다. 사전을 찾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어서 더 좋다.


Unforgettable, that's what you are
Unforgettable, though near or far
Like a song of love that clings to me
How the thought of you does things to me...(후략)

  그리고 Sia가 <도리를 찾아서>의 주제곡으로 이 곡을 불렀다.


Sia Performs 'Unforgettable' - The Ellen Show


  사실 이 곡이 <도리를 찾아서> 에 쓰이지 않았다면 나는 도리를 보러 굳이 영화관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니모를 찾아서> 를 재밌게 보긴 했지만 니모는 벌써 아빠를 찾았잖아! 뭘 또 찾으러 가려고! 하지만 단기기억상실증 물고기가 '잊지 못할 무엇'이 대체 뭘까 궁금해졌다. 픽사 덕후로서 한 번은 봐야 한다는 일말의 명분이 있기도 했고. 일부러 스포일러 당하기 싫어서 개봉하자마자 퇴근 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갔는데...


  <도리를 찾아서>는 딱 두 장면에 모든 것을 담았다. 스포일러를 피해 설명하자면 1. "조개껍질... 엄마아빠...으앙" 과 2. "What a wonderful world".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는 두 장면을 빼면 97분 러닝타임은 귀여움과 귀여움, 또 귀여움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니모는 씩씩하면서 귀엽고, 멀린은 까칠하면서 귀엽고, 도리는 발랄하면서(혹은 방정맞으면서) 귀엽다. 스토리는 별거 없다. 도리가 부모님을 찾는데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이 느껴진다. 그게 다다. '짜릿해, 늘 새로워, 귀여운 게 최고야!'라고 생각한다면 추천할 영화.


  영화를 보고 나오니 한밤중이었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영 가볍지 않았다. <주토피아>는 말할 것도 없고 <인사이드 아웃>도 무척 좋아서 디즈니랑 픽사 요즘 작품 잘 낸다 했었는데... 심지어 <정글북>도 재밌게 봤던 나였지만 이건 좀 아니었다. "니모, 괜찮아, 아빠 여기 있어, 아빠가 너 찾았어". <니모를 찾아서>에서 우리는 이미 부모의 사랑에 꺼이꺼이 눈물 흘렸었다. 기억장애가 있는 도리가 주인공이 되었지만 가족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는 핵심 줄거리가 비슷하다 보니 전작과의 차이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나에게 가장 아쉬웠던 것은 죽은 줄 알았던 도리 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는 점이다. 내가 사이코패스처럼 느껴지더라도 조금만 더 읽어봐 주시길. 니모를 찾아다닐 때도 도리는 이미 다 큰 물고기였는데 <도리를 찾아서>는 전작에서 멀린(니모 아빠)이 니모를 찾은 후 이미 1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다. 바다 생활에는 온갖 위험이 가득하다. 물론 도리가 돌아가신 줄 알았던 부모님을 찾게 되는 장면은 위에서 언급했던 첫 번째 카타르시스에 해당한다. 영화의 핵심인 장면인 데다 아동층이 주 타겟인 애니메이션에서 부모의 죽음은 쉽게 다룰 수 있는 소재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렇다면 '부모님은 너를 찾아 먼바다로 가셔서 여기엔 없어' 정도로 시련을 주는 것은 어땠을까? 돌아가셨다고 알게 된 도리 부모님이 몇 분 만에 등장하니 오히려 맥이 풀렸다.


  나는 디즈니도 좋아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픽사의 팬이다. 픽사가 전하는 '삶은 찬란하게 이어진다'는 이야기에 감동해서다. 픽사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폐허가 된 지구에서도 고물 로봇이 사랑을 만나고, 더러움의 대명사 생쥐도 최고의 요리사가 된다. 어떤 어려움에도 주인공들은 고통을 이겨 나가는 힘을 가졌다. 픽사 애니메이션을 보면 그 힘은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만의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부모의 죽음은 자녀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잊지 못할 슬픔으로 남을 뿐이다. 모든 사람이 부모와 함께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모두가 그런 행복을 누리지는 못한다. <도리를 찾아서> 를 보며, 부모님이 돌아가신 걸 알게 된 도리가 그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까 기대했었다. 도리를 보며 자신의 고통을 이겨낼 힘을 얻는 사람들이 생길 것도 몇 분 동안은 기대했었다. 하지만 도리의 부모님은 살아계셨고 도리의 고통은 해소되었다. 그 고통은 도리가 이겨낸 것이 아니다. 기적적으로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나는 픽사가 언젠가 가까운 사람, 특히 부모의 죽음 속에서도 삶을 찬란하게 이어나갈 주인공을 보여 주면 좋겠다. <UP>에서 주인공 칼 할아버지가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의 죽음 이후의 삶을 살아가지만 부모의 죽음은 그것과는 또 결이 다른 고통일 것 같다. 아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어두운 내용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모습에서 감동을 자아내는 것은 픽사가 제일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Ps 1.

도리에게. 나는 널 정말 좋아하고 네가 부모님을 찾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건 그냥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 절대 너의 불행을 바라고 쓴 글이 아니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번에 글 쓰면서 너희의 평균 수명이 10년 정도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더 미안한 거 있지. 너희 부모님 만수무강을 빌고, 앞으로도 영원히 온 가족 행복하게 살면 좋겠어!

  Ps 2.

그렇다고 다음에 <멀린을 찾아서>에서 만나진 않았으면 좋겠다! 내 맘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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