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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Sep 25. 2016

출근길 지하철 속에서 얻은 교훈

사람 많다고 욕할 게 아니었다

그렇다.

나는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다.

평일 아침 한시간 십오 분,

십 분을 걸어 지하철을 타고

2번을 환승해 한강을 건너 회사로 간다.

숨 돌릴 만하면 환승역에 도착하니 한숨이 나지만

버스로는 두 시간도 넘게 걸리니

선택의 여지 없이 출근길은 지하철이다.


지하철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대개 공감할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구밀도 속에서

희박한 산소를 들이마시며

좀비처럼 으어어어 쓸려다니면

이미 회사에 도착할 때쯤

우리의 행복지수는 OECD 최하위권에 머무는 것을.


그렇지만

분명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부엉부엉 시부엉 붐비는 지하철 속에서

욕 한 바가지를 속으로 삼키는 대신

이러저러한 깨달음들을 되새겨 보며

하루를 따뜻한 마음으로 시작하면 어떠한가.



1. 대한민국의 부지런함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출근시간이 10시까지다.

그래도 입사 초기에는 9시에 맞춰 출근했는데

아침의 여유를 즐겨 보자던 깜냥이었다.

의도는 좋았다. 그러나

출근길 지하철 부비부비를 겪고 나면

여유는커녕 삶의 의욕은

산소호흡기라도 달아줘야 할 만큼 희박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탓에

출근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춰

지하철을 타게 되었는데

모세의 기적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아니, 아침 지하철이 이렇게 한산할 수 있던가!


여덟시에 탄 지하철에서는

인파 속에 발이나 밟히지 않으면 다행이었는데

아홉시에 탄 지하철에서는

손잡이도 잡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그뿐인가,

환승역을 지나고 나면 앉을 자리도 생기더라.


아, 아침시간 정신없는 지하철은

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지런해서

만들어진 것이었구나.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과

같은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모두 이렇게 열심히 일하니까

나라가 망하진 않을 것 같다.

다행이다.



2. 이웃과 함께하는

삶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현대인들에게는 사람 간의 교류가 부족하다고.

농경사회 시절 흥하던 두레며 품앗이는

이제 고대 유물이 되었다며 한탄하는 그대여.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어보자.

당신의 고민은 곱게 접어 하늘 위로.


몇 달 전, 저 멀리 덴마크에서는

신체에 10킬로에서 30킬로의 압박을 가하는

'안아주는 기계'가 나왔다고 한다.

자폐증 환자는 물론, 비장애인들의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데


우리 지하철 출근자들은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그만한 압박을 느낀다.

바늘 하나 꽂을 수 없을 것 같은 번잡한 지하철에

출입문이 열리는 순간

스무 명의 사람들이 더 들어오는

기적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아직 스트레스로 죽지 않은 것은 어쩌면

안아주는 기계를 능가하는 이 압박 때문이 아닐까.


풀이 눕듯,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듯

지하철의 움직임에 우리 민초들은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한다.

그럼에도 아무도 넘어지지 않는 의연함이

우리 이웃들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3. 우주 속 나라는 미물의

겸허함을 배운다.


무심코 지하철에서

'아, 사람 진짜 많네' 생각하는데

약 0.5초만에

'너도 사람이다 닝겐'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 또한 이 복작복작한 공간에서

산소부족을 야기하고 있는

한갓 지나가는 1인일 뿐이거늘

뭐 잘났다고 '사람' 많음을 탓하냔 말이다.


이 지구에는 나같은 사람이

60억도 넘게 있고

우주 전체로 따져 보면

지구만 한 크기의 별들도

60억, 아니 60억 제곱은 넘게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이 좁은 지하철 칸에 어떻게든 비집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왠지 모를 겸허함을 느끼게 된다.



얼마 전 미간에 새겨진

미세한 주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대로라면 항상 인상을 쓰고 다니는

못된 독거노인이 되어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골방에서 혼자 욕지기만 읊조리다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겠다는

오싹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하철 출근길에 얻을 수 있는

이러이러한 교훈들이 있는 만큼

출근길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지하철의

소소한 불편일랑 웃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인배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 매주 수요일, 취향 가득 담긴 제 글을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매일매일 읽을거리]도 소소하게 운영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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