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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22. 2016

"저는 지금도 충분히 예쁜데요?"

제 취향은 제가 정합니다. 존중해 주시죠.

  "충치는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그런데 혹시, 스스로 입이 튀어나왔다는 생각 해본 적 없어요?"

  "네? 없는데요?"

  "음, 잠시만요."


  평화롭던 어느 날, 충치검사를 하러 치과를 갔는데 뜬금없이 '입이 튀어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어리둥절하는 찰나 진료실을 나갔던 의사는 웬 쇠막대기를 들고 돌아왔다. 그 쇠막대기를 대뜸 내 코끝에 갖다대고는,


  "여기, 코랑 턱이 닿도록 일직선으로 막대기를 댔을 때 입술이 닿으면 입이 튀어나온 거거든요. 이런 경우에는 교정을 하면 옆모습이 날렵해져서 훨씬 예뻐질 수 있어요. 인상이 뚱해 보인다는 얘기도 안 들을 거고. 구강상태에는 문제가 없어도 이런 경우엔 미용적인 문제로 많이들 교정해요. 2년 정도 걸리고."

  "아...네."

  "교정 생각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네."

  "교정하면 되게 예뻐질 것 같은데. 꼭 한 번 생각해 보고, 다음에 또 오세요."

  "...안녕히 계세요."


  충치가 없다는 말에 잠시 기분이 좋았는데, 치과를 나올 때쯤에는 교정 이야기 때문에 흥이 다 깨져버렸다. 내 평생 다녀본 치과가 못해도 열 곳은 넘는데 어디서도 교정을 권했던 적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치열이 반듯하다고 건치상까지 받았고! 내가 그 자부심에 일년에 한 번은 충치검사를 받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엔 웬걸. 내 돈 주고 '인상이 뚱해 보인다'느니 '입이 튀어나왔다'느니 생각지도 못한 욕을 얻어먹고 온 꼴이 되었다. 주위에서는 병원에서 돈 벌려고 그러는 거라며 신경쓰지 말라고 했지만 쿨하지 못한 나는 분노의 이불 발차기를 며칠이나 했다.


  그때 내가 치과를 나서며 할 말은 고작 '안녕히 계세요' 같은 게 아니었다. 나를 안녕하지 못하게 만든 사람에게 안녕을 빌어주고 오다니. 그 의사는 본인의 돈벌이를 위해 필요치 않은 교정을 권했다. 돈은 잘 먹고 잘 사는 데 필수요소니까 권유 정도야 물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나에게 자신의 미적 기준을 들이밀었고, 나는 기분이 나빴다는 거다. "교정하면 되게 예뻐질 것 같다"는 말이 '지금 너는 예쁘지 않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반박했어야 했다. 왜냐면 나는 예쁘니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예뻐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그 본능의 연장이자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행동이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나는 예쁘다!'는 자신감은 대개 스스로를 좀 더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왠지 거울에 비친 모습이 평소보다 더 예뻐 보이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신이 나서 싸돌아다니는 내가 그렇다.


  그런데 '예쁘다'라는 단어는 형용사 중에서도 주관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분류된다. 그 말인즉슨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라는 거다. 물론 김태희=여신, 원빈=3D그래픽 같은 등식에 많이들 공감하는 것을 보아 어느 정도 보편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은 있는 듯해 보이지만, 단발머리vs긴 머리라거나 셔츠vs후드티같은 비교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많은 기준들은 취향의 범주에 들어간다.


  취향은 타인에게 해롭지 않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음이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등과 마찬가지로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여길지, 어떤 아름다움을 추구할지 또한 개인의 취향이다. 날씬한 몸매를 추구하는 것이 누군가의 취향이라면 그 사람 스스로 살을 빼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그 사람이 대뜸 다른 사람에게 "넌 살만 빼면 진짜 예쁘겠다! 다이어트 해야지!" 라고 자신의 미적 기준을 들이대는 행동은 자유를 벗어난 큰 실례다.


  지구에는 71억이라는 인구가 있고 그 수만큼 다양한 취향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취향들 중 몇몇은 마치 객관적인 미적 기준인 양 대접받으며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듯하다. '작은 얼굴', '눈 밑 애교살' 같은 건 이미 유명하고 '허벅지 사이 틈', '골반과 비키니 사이의 틈' 같은 틈새류도 대란을 일으킨 바 있다. 최근에는 그 기준에 '젊고 예쁜 여자라면 어깨에 승모근이 없을 것'까지 추가된 듯하다. 저런 미적 기준들이 단지 개인의 취향에 머무는 영역이라면 존중하겠지만 "승모근이 솟아올랐네, 아이돌 아닌 것 같은데" 같은 말이 공중파에 버젓이 방송된 것을 보면 선을 넘은 것 같다.


  취향은 뭐다? 존중이다! 우리에게는 모두 외모에 대한 자신만의 취향을 가질 권리가 있으며, 그 취향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월급날이면 퇴근하고 백화점 1층을 순례하는 것도 취향이지만 외모를 특별히 꾸며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도 취향이다. 내 취향을 존중받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의 취향도 존중하자. 다른 사람의 관심 밖에 있는 무언가를 굳이 취향의 영역으로 끌어오려고 강요하지도 말자. 


  하나하나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도 주관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이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내 취향에 나는 예쁘다. 그거면 된 거다. 내 입이 튀어나온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내 취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일이고, 의사가 뭐라 한들 내 튀어나온 입을 굳이 교정할 생각은 없다. 내 입이 기준보다 튀어나온 것은 팩트일지언정 그것으로 나를 '훨씬 예뻐질 수 있는 사람'이라 판단한 것은 내 취향 기준에선 선동과 날조다. 흥. 쫄보인 나는 뒤늦게나마 '안녕히 계세요' 대신 내가 했어야 할 말을 여기에 남긴다.


  "저는 지금도 충분히 예쁜데요!"



* 매주 수요일, 취향 가득 담긴 제 글을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매일매일 읽을거리]도 소소하게 운영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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