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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Dec 19. 2016

나이를 먹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

내 나이를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요즘 들어 얼굴에 자꾸 뭐가 난다. 단풍은 모두 져버렸는데 내 얼굴은 철도 모르고 울긋불긋하니 마음이 아프다. 겨울이라 실내외 온도차가 커서 피부가 부쩍 나빠졌구나 싶긴 하지만 작년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내 나이도 내년이면 부정할 수 없는 20대 후반이다. 설마 이건 피부노화의 증거? 잔뜩 우울해 있는데 엘리베이터에 우르르 탑승한 어르신들도 나이 이야기를 나누신다.


  "어휴, 또 이렇게 한 살 나이먹었네. 나 아직 마음은 소녀 시절 그대론데."

  "마음은 소녀더라도 몸은 늙어. 우리 나이 60이면 늙은 거지 뭐."


 어르신들 앞에서 내가 감히 노화를 생각하다니 죄송스럽지만,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는데 나도 60살을 맞이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피부는 예전만 못하고, 체력도 약해지고, 점점 뱃살도 붙을 거고. 지금같은 몸상태를 유지하려면 앞으로 점점 더 노력해야겠지. 아니 뭐 이런 불공정거래가 다 있담? 돈 주고도 못 산다는 젊음을 내고 나이를 사먹는데 내가 얻는 건 고작 미간 주름 뿐이냐고!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나이를 먹으며 얻은 좋은 것은 없을까. '세상 살아가는 경험'같은 피상적인 말로 퉁치지 말고 구체적으로. 어떻게든 나이먹음의 장점을 끄집어내다 보니 황금같은 주말이 훌쩍 지나갔지만 그 시간이 마냥 아깝지는 않을 만한 몇 가지를 찾아냈다.


  1. 내 목소리에 점점 힘이 생긴다.

  경력은 나이를 먹지 않으면 절대 만들 수 없다. 경력 1개월 차와 10년 차가 하는 말의 무게는 완전히 다르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오랜 경력에서 도출된 근거가 있는 사람이라면 좀 더 많은 이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 물론 나이만 먹고 훈계나 일삼는 꼰대가 되지는 않아야겠지만!


  2. 더 많은 것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비비크림을 바르면 얼굴이 잿빛이 되고 아이라인을 그리면 촌스러워져서 당황했던 20살 무렵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화장을 할 때마다 스스로의 실력에 감탄한다. 나이를 먹으며 수차례의 사투 끝에 나와 어울리는 화장법을 찾은 덕이다. 화장뿐이 아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어울리지 않았던 오피스룩이 이제는 딱 내 옷처럼 맞다. 교복이 어울리지 않게 된 건 좀 아쉽지만 앞으로는 북슬북슬한 퍼코트도 세련되게 걸칠 날이 올 거다.


  3. 다양한 맛을 즐기게 되었다.

  단맛만 맛인 줄 알던 내 혀가 지나친 설탕을 경계할 줄 알게 되었다. 무슨 맛으로 마시는지 몰랐던 밍밍한 허브티도 지금은 찬장에 종류별로 마련되어 있다. 느낄 수 있는 맛이 다양해지니 취향도 그만큼 넓어진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나이를 먹어가며 재즈와 클래식의 선율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행복의 정복>에서였나,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을 얻을 곳은 많을수록 좋다고 이야기했었다. 정말로, 나이를 먹을수록 즐기게 된 행복의 가짓수가 늘어나는 게 눈에 보인다.


  4.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게 되었다.

  글쓰는 것을 꾸준한 취미로 삼은 것도 올해로 7년이 넘었다.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여전히 알 길이 없지만 글을 쓰는 '나만의 방법'은 어느 정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뿐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방법이라던지 맛있는 크림파스타를 만드는 레시피라던지 많은 분야에서 나만의 매뉴얼이 생기고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굳이 실패를 사서 할 필요는 없으니까.


  5. 나 자신과 더 친해지게 되었다.

  나를 알게 된 기간이 또 1년 늘었다. 이젠 짜증이 났을 때 어떻게 달래주면 좋은지, 일하기 싫을 땐 어떻게 다시 의욕을 불어넣을지 대강 안다. 언젠가 내 마음이 변덕을 부려 이 방법들이 먹히지 않는 날도 오겠지만 그땐 그 나름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지금까지 늘 그랬듯이.


  작년까진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다. 거울 속 내 얼굴, 머릿속 내 생각은 크게 변한 게 없는데 괜히 걱정을 사서 하긴 싫었으니까. 그래, 그때 나는 나이먹는 걸 의식할 필요가 없을 만큼 젊었다. 이젠 슬슬 얼굴에서 새로운 주름이 발견될 거고 주말 이틀을 내리 놀면 다음 주 내내 피곤할 만큼 체력도 떨어질 거다. 하지만 어쩌겠나,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지. 오는 세월은 피할 수가 없으니 이렇게 된 이상 나이를 먹으며 얻을 수 있는 좋은 것들도 모두 가져가야겠다. 좋아. 이제 올 테면 와 봐라, 2017년!



* 매주 수요일, 취향 가득 담긴 제 글을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매일매일 읽을거리]도 소소하게 운영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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