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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y 17. 2019

좀비의 시대, 인류는 멸종되지 않을 수 있을까

스마트폰 좀비와 쓸모없는 시간의 상관관계

  지난 10년, 지구 전역에서 좀비와 인류가 한데 얽혀 살고 있다. 영화 속 묘사와 사뭇 다른 생김새에 처음부터 그들을 좀비라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새 거리를 점령해버린 그들의 모습, 고개를 잔뜩 숙이고 앞을 보지 않으며 터덜터덜 걷는 그 자세는 명백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좀비의 생태와 일치했다. 그어어어어… 소리를 내지도 않고 안구가 돌출되지도 않았으며 피부색도 인류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전염성은 존재하는 듯싶다. 어느새 그 수가 늘어 도보 10분 거리 출근길에만 세 명쯤 관찰되는 요즘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한 좀비의 진화를 우연히 목도했다.

  대개 좀비들이 고개 숙여 바라보는 것은 한 손 크기의 스마트폰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유흥거리를 즐기는 것은 물론 인터넷 신문을 읽으며 지식을 함양하려는 좀비들도 있지만 그 매체는 보통 스마트폰, 가끔 가다 아이패드 정도이다. 놀랄 일도 아닌 것이 좀비의 발생 자체가 스마트폰의 발명과 맥을 함께했다는 게 정설인데... 그는 폰과 패드, 아니, 하다하다 디지털을 넘어 아날로그로 회귀한 좀비였다.

  그 좀비는 책을 읽고 있었다!



  스마트폰 바라보는 것을 길에서도 멈추지 않는 사람을 스마트폰 좀비, 외국에서는 스몸비라고 한다더라. 나는 이 좀비들이 정말 정말 싫다. 멀리 그들이 보이면 지나가는 차에 치이지는 않을까 걱정되고, 가까이 다가와 내 앞이나 뒤를 치면 걱정은 짜증으로 바뀐다. 바야흐로 도시의 고라니 스마트폰 좀비. 나는 그들을 단순히 스마트폰에 중독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 출근길에 생각을 바꿔먹었다. 스마트폰은 작고 가벼우니까 심정적으로 이해라도 됐지, 멀리서 봐도 300페이지가 거뜬히 넘는 책을 읽으며 걸어가다니! 가는 길이 오 분 정도 겹쳐 힐끗힐끗 관찰했는데 아예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는 일이 없더라. 골목길이라 자칫하면 사고 나기 십상인데 책에 푹 빠진 그는 그런 것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제야 짐작하게 되었다. 좀비는 스마트폰 때문에 생긴 게 아닐 수 있다. 최근 10년,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넘보는 중이고 SNS는 열심히 사는 멀고 가까운 사람들의 일상을 너무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뭐라도 쓸모있는 시간을 보내야지'라는 마음의 압박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만든 건 아닐까? 출퇴근길 하염없이 걷는 시간은 공허하다. 피곤하고 지루하다. 그러니 뭐라도 보면서 그 시간을 쓸모있게 바꿔보자는 생각일지 모른다.

  쓸모없는 시간은 정말 쓸모없는 걸까?


  '우린 지나치게 열정적이다', '쉬어갈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힐링 에세이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스마트폰 혹은 책을 읽으며 얻는 정보는 지금 이 순간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아니다. 그만치 중요한 거였으면 가던 길 멈춰 확인했을 거다.


  걷는 길을 살피는 당연한 행위로 우리는 스스로 안전을 챙기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가벼워지는 머릿속을 얻을 수 있다. 그것들은 우리가 같은 시간 얻을 수 있는 그 어떤 정보보다 소중한 것이다. 쓸모없는 시간까지 제대로 누리는 건 좀비도 스마트폰도 기계도 못 하는 인간만의 일이다.


  덧. 스마트폰 좀비들의 교통사고 사상자가 한해 1천3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책 읽는 좀비들은 그 수가 적어서 집계되지 않았나 본데, 아무튼 일부 지자체에서는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자는 말만으로는 안전사고를 해결할 수 없다며 '달라진 보행 문화에 맞는 방식으로' LED 바닥 신호등을 설치한다고 한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이렇듯 종종 잘못 쓰이고 내 세금은 저런 데에도 쓰인다. 교통사고로 다치는 사람은 없어야겠고 그거 설치에 얼마나 하겠냐만 없어도 문제없을 수 있는 설치물인데…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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