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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l 04. 2019

우리에겐 박수받을 순간이 필요해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스포 없는 영화 이야기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이 영화는 재밌습니다. 웃음 터지는 장면이 많습니다. 그게 가장 큰 특장점입니다. 이 장점만으로도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제가 쓰는 글에 이 장점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아 가장 먼저 말해둡니다. 브런치 무비패스로 조금 먼저 보고 왔어요.





  프랑스 영화는 왠지 예술적이고 철학적일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쪽 방면에 문외한인 저에겐 잘 맞지 않을 것 같다는 편견도요. 그 편견들이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앞에서 희미해진 건 이 스틸컷 때문입니다. 야성미 넘치는 가슴털과 출렁이는 뱃살, 정신이 혼미해지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분명 코미디의 아우라가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가 예술적이고 철학적이라면... 그건 그거대로 볼만하겠다!' 싶기도 했죠.


  영화 분위기는 예고편 그대로 시종일관 유쾌합니다. 시리얼에 항우울제를 말아 잡수시는 백수부터 재능 없는 전업 로커, 곧 망할 게 분명한 사업가를 포함해 이래저래 삶에 별다른 낙이 없는 아재들 여덟 명이 주인공인데요. 어찌어찌 남자 수중발레 취미반으로 모인 이들이 이왕 이렇게 된 거 세계대회 출전을 목표로 하다가 어찌저찌 마주한 코치들의 응원과 갈굼을 거쳐 여러모로 성장합니다.



  인물이며 사건만 따져보면 #코미디 #힐링 #감동 같은 적당한 태그로 설명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심오한 이야기를 일부러 숨겨둔 영화가 아니어서 쉽고 재밌게 볼 수 있고요. 그런데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기존의 도전이며 성공을 다룬 영화들과 조금 다릅니다. 좀 더 현실적이에요.


  주인공들에게 수중발레는 취미입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버킷리스트가 아니라 어쩌다보니 우연히 가지게 된 취미요. 큰돈을 벌어주는 취미도 아니기에 여기서 성과를 얻어도 인생의 성공으로 곧장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인생은 수중발레를 시작한 전후로 나뉠 만큼 무언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불편했던 상황들을 마주할 용기를 얻었고 고난을 딛고 일어설 추진력도 생겼죠. 수중발레로 받은 박수갈채 덕분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고 박수일지도 몰라요.

  대충 산다 말은 하지만 무엇 하나라도 노력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어요. 되는 대로 살고 있다며 앞에선 허허 웃어도 속으론 불안해서 손톱을 깨무는 사람이 설마 저 혼자는 아니겠죠. 그치만 노력해도 안 되는 건 분명 있더라고요. 특히 커리어적인 부분에서는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건 그 자체로 행운이 따라줘야 하고, 운 좋게 그런 일을 하더라도 업무성과는 고생한 만큼 나오지 않는 게 다반사입니다. 이럴 때 힐링을 위한 많은 콘텐츠들은 "그만하면 잘했어요 토닥토닥" 위로를 건넵니다. 하지만 위로는 진통제 같은 것이어서, 당장은 좋더라도 언제까지고 거기에 의존할 순 없는데요.


  실패를 겪어 본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박수일지도 모릅니다. 괜찮다는 말보다 잘하고 있다는 말, 위로의 토닥토닥보다는 칭찬의 박수가 더 필요할 때 있더라고요. 위로는 상처를 다독여주지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는 데에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들었던 칭찬은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는 안 될 놈인가 보다' 좌절할 때쯤 꺼내 보면 '내가 이렇게 빛날 적이 있었지, 그러고 보면 영 안 될 놈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라며 딛고 일어설 역할을 합니다.


  작고 큰 실수에 짓눌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받을 기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뭐든 좋아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작은 믿음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합니다. 박수받을 일을 시작할 에너지는 유쾌한 이 영화에서 얻어도 괜찮겠는데요!



* 매주 수요일, 취향 가득 담긴 제 글을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매일매일 읽을거리]도 소소하게 운영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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