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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Sep 22. 2019

내 시절을 만든 노래, 패닉의 <달팽이>

배가 말랑말랑하던 달팽이 학생의 일기

*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 6편에 실린 글입니다.


  음악 듣는 걸 좋아합니다. 혼자 따라부르는 것도 좋아해요. 음치는 아닌데 노래를 잘 못하는 건 함정. 그래서 괴롭습니다. 이렇게 부르면 안 되는 걸 아는데 목소리가 이렇게밖에 나오질 않는다고요. 포기하면 편할 텐데 노래욕심은 사라지질 않네요.

  대학생 때 과외로 번 돈을 보컬 트레이닝 과외에 쓰며 창조경제의 주역으로 3개월 활동했었는데요. 저보다 한 살 많았던 선생님은 자신의 능력껏 많은 조언을 전했습니다. 목이 아니라 배에 힘을 줘야 한다, 배가 이렇게 말랑말랑해서 어째 운동을 해야겠다, 목구멍을 닫는 게 아니라 열어서 소리를 내야 한다, 말을 할 때처럼 성대를 쓰면 되는데 찡찡거리면서 말할 때처럼 쓰라는 게 아니다 등등. 앓는 소리를 낼 때마다 어허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던 선생님은 한 달 특훈을 거치고도 제 실력이 나아지질 않으니 목표로 잡은 곡을 바꿔버렸습니다. 아이유의 <내 손을 잡아>에서 패닉의 <달팽이>로요.

  한 달에 버는 돈의 절반을 월세로 쓰던 선생님은 현관문을 열고 자취방에 들어설 때면 이 노래가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고시원 살던 저는 건물 옥상에서 몰래 이 노래의 ‘언젠가 먼 훗날에’ 가사를 외쳤습니다. 목구멍 열어보려고 기를 쓰면서요. 그때 선생님의 꿈은 가수로 멋지게 데뷔하는 거였고 제 꿈은 카피라이터가 되는 거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언젠가 먼 훗날이었을 바로 지금, 저는 그때의 꿈을 이루지 못했는데 선생님은 어떠려나요. 그닥 나아지지 않는 노래실력과 바닥을 보이는 통장 잔고 때문에 보컬 과외를 그만두게 되어 그다음의 이야기는 모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배가 말랑말랑한 달팽이 학생이었고 선생님의 많은 꿈을 더 알기엔 3개월이 짧았습니다. 그치만 우리는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함께 노래한 사이니까요. 저는 계속 선생님을 응원할 겁니다. 가수가 되셨다면 좋겠고요, 가수가 되지 못했더라도 가수가 되었다면 알 수 없었을 행복을 한가득 얻으셨다면 좋겠어요. 카피라이터는 되지 못했어도 이렇게 글 쓰며 사는 저도 잘 지내고 있답니다!




* 매주 수요일, 취향 가득 담긴 제 글을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매일매일 읽을거리]도 소소하게 운영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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