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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06. 2019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

문장이 아니면 전달할 수 없는 더부룩함에 대해

  종종 마음이 더부룩해지곤 합니다. 원인은 모르겠습니다. 소화하기 힘든 큰 마음, 혹은 애초에 소화하지 못할 나쁜 마음을 먹어서가 아닐까요. 잠깐이면 쑥 내려갈 때도 많지만 나쁘게 먹은 시기 질투 등은 만성으로 저를 괴롭힙니다. 제 속이 좁나 봐요.

  이것도 체질인가, 개선이 될까 싶어 요가를 해 보고 템플스테이에 참여하고 논어나 혜민스님 에세이도 읽어보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실력보다 명성이 대단한 사람들, 노력 없이 모든 걸 가진 사람들, 잘 놀고 잘 먹는 사람들. 그늘이라고는 없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마음의 소화불량이 도집니다.

  제 마음이 건강치 못한 건 시력이 나쁘거나 살이 잘 찌는 체질인 걸 어쩔 수 없듯 타고난 것으로 체념하고 있습니다. 즐길 수 없다면 피해야지요. 그래서 SNS를 잘 안 합니다. 문제는 제가 마케터라는 건데,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는 인스타며 페북을 살필 일이 많습니다. 일인데 어쩌겠어요. 요즘 뜨는 콘텐츠를 레퍼런스로 삼으려면 이렇게 타임라인 속 재미있는... 아니 인기 많은 게시물들을 살펴야죠. 페이스북의 셀프 인테리어 페이지에 올라온 멋진 자취방은 그렇게 보게 됐어요.

  한 번쯤 살아보고 싶던 햇볕 잘 드는 고층 원룸, 10평 남짓 되는 그 공간을 집주인은 참 알차게 꾸려놨더라고요. 책이랑 음악을 좋아한다는 자기소개를 보고 저랑 취향 비슷한 사람인가 싶었죠. 저랑 똑같은 미니 빔프로젝터까지 쓰고 계시더라고요. 그런데 스크롤을 내려 사진을 볼수록 저랑은 다른 모습이 많으시네요. 친구들을 몇 명이고 초대해 함께 술을 마신다거나, 저라면 자리가 없어서라도 알라딘에 중고로 팔았을 책들을 책장에 꽂아둔다거나. 슬슬 마음이 메스꺼워집니다. 어... 왜...? 넓은 집이 부러워서? 큰 책장을 가져서? 친구가 많아서?

  뭐가 부럽길래 질투가 난 걸까요? 우리 집보다야 평수가 넓다만 조금 무리하면 나도 월세를 낼 수 있을 텐데. 커피머신? 미니 바? 아일랜드 식탁? 사진 속 무엇 하나 탐나는 게 없는데요. 이 불편의 정체는 무엇이지. 짚이는 게 없어 사진도 제 마음도 좀 더 찬찬히 뜯어보았습니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할 인싸력은 부럽지만 저는 원체 혼자 쉬는 걸 좋아하고요. 가지런히 많은 책을 쌓아 둘 큰 책장도 부럽지만 저희 집 책장이 저에겐 훨씬 알찬걸요. 알라딘에 팔지 않은 최정예 책들만 다양한 장르로 꾸렸거든요.

  부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질투도 아니었어요. 시기도 아니고, 동경이나 감탄도 아니고. 그냥 '멋진 집이지만 집주인의 취향은 나랑 맞지 않네' 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정입니다. 집에 놀러온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남게 될 설거지며 집 청소가 떠오른 나, 소설이 희박하고 자기계발서가 많은 책장을 가진 그. 생판 만날 일 없겠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겠다고 무의식중 생각해 마음이 불편해진 것뿐입니다. 선입견도 좋은 건 아니다만 모르는 사람에게 나쁜 단어로 설명할 마음을 품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나요?

  마음을 오랫동안 두 종류로 구분해 왔습니다. 좋은 마음은 자세히 살피고 오랫동안 기억해 재활용하고 싶어 하면서 나쁜 마음은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타는 쓰레기로 분류했죠. 기껏해야 슬픔, 우울함, 외로움, 질투 같은 단어 정도만 붙이고요. 그런 단어로 말할 수 없는 마음들도 많지 않았을까요. 질투로 대충 분리돼 버려진 마음들이 사실 질투가 아니었다면, 저는 속이 좁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까칠한 사람일 수 있겠네요!


*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 7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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